`내로남불` 무슨 어법이나 문법에도 맞지 않는 글이라 옆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란 그런 것이라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내로남불 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요사이 청문회 정국이 시작되었는데 몇 십 년 전의 일도 끄집어내고 소위 말하는 택도 아인 소리도 하는 등 우문우답에 저절로 장관 후보자의 양식이 그것 밖에 안 되는구나…자조도 해 본다. 중국 송나라 때 명신(名臣)들이 쓴 `송명신은행록(宋名臣言行錄)`이란 책이 있는데 첫 장에 보면 `지우책인명(至愚責人命)`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남의 허물이 하나면 내 허물은 수없이 많다`는 뜻으로 쓰여진다. 남이 하니까, 남이 가니까, 남이 보니까가 아니라 먼저 나부터 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하나같이 누구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발뺌부터 먼저하고 나서 증거를 갖다대면 그때서야 젊어서 그랬다고 잘못된 것이라며 용서를 구하고 사과를 한다. 우리 아버지 세대에는 돈만 있으면 첩 하나쯤 두어도 된다는 의식이 팽배해져 있었다. 고위 관리직에 있으니 그 정도는 아무 일도 안 된다는 사회상이 활개를 치고 있을 즈음 이혼이나 재혼은 사치였는지 모를 일이다. 내로남불은 어디에서나 만연해지고 있는 다시 말하면 시대 사회상 임에 틀림이 없다. `지가 하몬 다 학실한 기고, 저거가 하몬 안대는 기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엄연히 내 부인을 놓아두고 남의 여자를 엿보면 그게 도덕 윤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후배되는 친구가 나이트클럽에 놀러가서 묘령의 여인을 만났는데 그날 저녁 일을 쳐 임신을 하는 바람에 남매를 잘 낳아 기르고 있었으며 잘 나가던 직장과 참한 부인도 걷어차고 나이트에서 만난 여인과 신접살림을 차렸는데 채 2년도 안돼 헤어졌다. 이 친구 하는 짓이 바로 내로남불의 본보기인 줄 모르겠다. 지금은 본처하고는 만날 수도 없고 남매는 항시 불만투성이다. 혼자 밥을 지어야 하고 빨래며 시장보는 것까지 도맡아 해야 되니 참으로 못할 짓을 했다며 늦은 후회를 하지만 지나간 물줄기와 진배없다. 그래서 조물주가 세상을 만들 때 선과 악을 구분해 만들었지 않나 싶다. 노자 도덕경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지지불태(知止不殆)가이장구(可以長久), 족한 줄을 알면 욕된 일이 없고 머무를 줄을 알면 위험에 빠지는 일이 있기에 일신의 안전과 장구를 보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다. 내 상사가 최고요 우리 마누라가 남의 부인보다 백배 더 좋고 내 자식이 누구보다도 자랑스럽다는 사고로 나간다면 공청회에 나가 논문표절이니 땅투기니 이런 말을 안 들을 것 아닌가. 머리에 맞지 않는 갓을 쓰면 바람에도 날리고, 오래 지탱하지 못하는 현실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 것 아니겠는가.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는데 요사이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음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견리사의(見利思義)견위수명(見危授命), 이(利)를 보면 의(義)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쳐라. 논어 헌문편에 나오는 문장이 뇌리를 스친다. <저작권자 ⓒ 창원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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