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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외호 칼럼]
인생을 반추하는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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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반추하는 가을

창원일보 | 입력 : 2025/08/2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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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가을이 눈앞에 여민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첨단 환경에서 살고 있다. 여행 중 형형색색의 단풍을 보고 탄성보다 스마트폰 보는데 열중이다. 이는 친구라면서도, 연인이라 하면서도, 마음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의 신비를 잘 알지 못하고, 자연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받아들이거나 관찰하는 눈도 맑지 못하다. 자연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혼자라도 좋다. 자연을 벗 삼고, 하늘을 이불 삼고, 산천을 땔감 삼고, 땅을 베개 삼고 여행할 수 있어야 한다.



변화무쌍한 삶에서 넘치는 것보다, 비움으로 가득해지는 가을이 주는 사색의 깊이는 너무 찬란하다. 마음 하나에도, 눈길 하나에도, 발길 닿은 곳마다 달콤이 익힌 열매는 뜨거운 나눔이다. 작은 도토리 하나라도 다람쥐에겐 나눔이며, 때가 되면 내려놓아야 하는 게 가을이 주는 자연의 순리이고 교훈이다. 가을이 되어도 잎을 떨구지 못하면 봄에 새싹을 틔우지 못해 그 나무는 죽고 만다.



욕심의 그릇은 처음에는 작았으나 채울수록 풍선처럼 부풀어 가다, 끝내 곪아 터진 부위를 도려 내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부질없는 욕심보다, 자연의 숲처럼 비움과 나눔의 순리를 따라야 하는 게 우리의 삶이다.



잠시 무성했다가 떠나는 가을 단풍은 우리의 삶을 반추해 준다. 한 생을 살면서 온갖 것을 다 내어주고 다시금 땅으로 돌아가는 삶, 봄 날에 새 순의 생명을 알려주고. 여름엔 무성한 잎으로 뜨거운 햇빛을 온전히 머금고, 쉼터를 만들어 주고, 가을엔 열매를 잉태하며, 그리고 제 할 일을 다 하곤 겨울엔 땅의 자양분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던지는 삶을 말이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아둥바둥 살았을까. 이 땅에서의 몫은 사랑하는 일뿐인데 `나`라고 하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할까? 낙엽처럼 어김없이 지고 말 것을, 세상을 위해 풀어 놓은 내 삶은 누군가 기억 속에 있겠지만, 나를 위해 살아 온 삶은 무엇으로 남길 것인지 그저 흙으로 갈 뿐인데. 가을빛에 물들어 제빛을 내고 가는 낙엽을 바라보며 우리 삶을 반추할 뿐이다.



가을 길 한들거리는 코스모스를 보면서 `코스모스가 빨간 양산을 편 채 들길을 걸어가고 있었다고 생각해 보는 것, 그러다가 그 코스모스가 심심할까봐 들길이 빨간 양산을 받으며, 함께 걸어가주고 (손동연. 가을날) 있다고 상상해 보는 것. 그러면 갑자기 친구 같은 가을 시가 떠오른다.



경희루 연못에 바람이 분다. 우수수 단풍잎이 떨어진다. 잉어들이 잔잔히 물결을 일으키며 수면 가까이 올라와 단풍잎을 먹는다. 가을 연못 속에 잉어가 놀고 있고 그 위로 단풍잎이 떨어진다. 단풍이 떨어진 연못을 내려다 보면서 "잉어가 단풍이 되고, 단풍이 잉어가 되는" (정호승, 가을 연못) `가을 연못`의  시상에 빠져 까르르 웃다 보면, 내가 마치 단풍이 되어 잉어들과 놀고 있는 기분이 든다.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가 익어가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도 익어가네. 익어가는 날들은 행복하여라. 밀이 필요없는 고요한 기도 가을엔 너도 나도 익어서 사랑이 되네. (이해인, 익어가는 가을) 이 시를 음미하면,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가을처럼 차츰 곱게 물들어 가며, 인생의 시작과 끝이 바로 사랑이란 생각이 든다.



가을의 열매를 먹고 남는 씨앗을 버리려고 하다가 가만히 손에 올려놓고 생각해 본다. 씨앗을 감싸고 있는 것은 썩고 가을은 씨앗만 남긴다는 것을 (허영자, 씨앗), 그리고 그 남은 딱딱한 진실의 씨앗만이 그 속에 생명을 담아 겨울을 통과하고 마침내 봄에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삶의 깊은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높고 푸른 가을하늘은 나를 품었던 `엄마`이고, 내가 뛰놀던 고향의 땅이다. 감나무 가지에 하나 달랑 남은 감홍시 파는 까치를 상상하면서 시인이 되어 본다. 가을 나무엔 점점 잎이 쇠약해 가며, 열매들은 차츰 물들어 간다.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가 영글어 가는 것을 보면서, 시간과 세월이 흘러 가을을 맞이한 우리도 익어가는 지를 생각해 본다. 또 열매가 익어야 단맛이 깊듯이, 인생도 익고 성숙해야 행복의 단맛이 나는데, 과연 우리의 가을은 익어가는 날들인지 음미해 본다. 행복의 단맛이 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가을맞이 채비를 한다.



가을 여행을 통해서 가을의 여러 표정들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기를, 그래서 생각과 마음의 키가 쑥쑥 자라고, 자연의 신비를 바라보는 눈이 더욱 넓고 오묘해 지기를, 우리는 가을하늘처럼 생각도 푸르고 맑기를, 우리도 가을처럼 비워야 만이 채우는 법, 새봄이 오면 새싹을 틔우며, 여름엔 잎이 무성해졌다가. 가을의 열매처럼 내면의 뜰을 채울 수 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가을이 고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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