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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호 소설 <도바 위에 뜬 별>
제1회 인생 첫 번째 도바 - 국제시장 먹자골목 2

국제시장 노점상 대부, 악어 형님과의 만남

손병호 소설 <도바 위에 뜬 별>
제1회 인생 첫 번째 도바 - 국제시장 먹자골목 2

국제시장 노점상 대부, 악어 형님과의 만남

창원일보 | 입력 : 2026/04/0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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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 1959년 함안 출생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서로 신상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길 건너 수입품 코너 차양막 아래에서 중년의 사내 하나가 이쪽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벌어져, 몸이 단단해 보였다. 입에는 시가를 물고 있었는데, 그 태도가 주변과 어딘가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한 번 훑어본 뒤 걸음을 옮겼다. 걸음은 느렸다. 화면 속 인물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어딘가에서 스친 듯한 얼굴이었다. 낯이 익은데도, 기억은 붙잡히지 않았다. 그가 담배를 두어 번 털었다. 재는 바깥이 아니라 그의 바지 단 안쪽으로 떨어졌다. 노점 위로 날리지 않으려는, 몸에 밴 동작처럼 보였다.

 


인근 노점상들이 그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어떤 이들은 "악어 형님"이라 부르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골목에서 억세기로 소문난 재첩 장수 아주머니들도 일하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마지못한 듯 고개만 끄덕였다. 그가 우리 곁을 지나가다 잠시 걸음을 멈췄다. 내가 만든 베니어판 도바를 힐끗 보더니, 고개를 갸웃하고 난 후 다시 걸음을 옮겼다.

 


구 씨 형님이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봐라, 성호 동생. 저 양반이 대각사 주지 친아우, 악어라 하는 사람인기라.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이 근처 매장 수십 개가 모두 대각사 소유다. 임대료도 시세 반값 밖에 안된다 아이가. 그걸 그렇게 만든 사람이 바로 저 양반이다. 근데 참 희한하지. 본인은 매장 마다하고 노점을 고집하는기라"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도,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라는 생각만 붙들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나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점심 무렵, 몰려들던 손님들이 한풀 꺾이자 골목이 조용해졌다. 악어라 불리던 그가 다시 내 도바 앞에 섰다. 그는 별다른 말없이 주머니에서 두툼한 청테이프를 꺼냈다. 찌익, 테이프가 뜯겨 나가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아무리 길바닥 도바라도 생짜로 베니어 판 위에 신문지 깔면 안 됩니더. 물건이 싸구려로 보일 것 아닙니까. 페인트를 칠하든지, 아니면 바탕천이라도 깔아야지요"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도바 합판 모서리를 테이프로 감아 붙였다.

 


"이렇게 합판 끄트머리를 톱질한 채로 그대로 놔두면, 옷 만지다 손님들 손 베입니다. 어쨌든손님 안전도 생각은 해야지요" 그의 입술 옆으로 담배 연기가 가늘게 올랐다. 자갈치 쪽에서 밀려온 비릿한 냄새가 그 연기와 섞여 내 쪽으로 흘러왔다. 냄새가 그다지 싫지 않았다.

 


"장사 끝나고 이 합판 들고 나한테 와 보소. 당가치려면 도바 위에 올라가야 하는데, 이 상태로는 합판이 많이 약합니더. 보강을 하든지, 아니면 아예 두꺼운 걸로 바꿔야지요. 니스 칠이 안 돼 있으면 장마 때 습기 먹어 바로 곰팡이 핍니더. 합판 표면이 겉보기엔 맨들해 보여도, 손님들이 몇 번만 휘젓고 나면 원단 올이 다 나갑니더. 페인트로 한 번 칠하고, 그 위에 니스를 몇 번 올려야 원단도 안 상하고 옷 때깔도 살아납니더" 그가 합판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나는 갑작스러운 그의 출현에 얼떨떨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냥 서 있었다.

 


그가 내 허리춤을 한 번 훑어보더니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장사꾼은 거스름돈부터 챙겨야지요. 지금 안 바쁠 때 은행에 가서 잔돈부터 바꿔 오소. 돈을 그렇게 주머니에 쑤셔 넣는 기 아입니다. 내처럼 전대를 하나 차소" 이 상황을 지켜보던 대팔의 눈빛에는 불만이 엿보였지만, 악어라 불리던 그이 앞에서는 입을 열지 못했다. 구 씨 형님 또한, 담배 연기를 길게 뱉으며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악어형님이라는 사람은 청테이프 붙인 자리를 손으로 한 번 더 눌러 보고 자리를 떠나려다, 나를 보며 말했다.

 


"아까 신 부장한테 연락 왔습니더. 오늘은 바빠서 못 온다 하데요. 장사 마치고 나면 그쪽에서 한 번 연락해 달라고 부탁합디다. 대팔아, 니도 속은 좀 상하겠지만 이번에는 한 번만 사정 봐주라. 신부장이 이 양반한테 전에 신세 진 게 있다 카더라. 한 며칠만 도바 좀 쓰게 해 줘라"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팔이라는 친구가 볼멘 목소리로 받아쳤다.

 


"악어 형님요, 내 입장에서는 어차피 내 도바도 아닌데 양해고 뭐고 할 것까지는 없습니더.다만 나 한테 맡긴다 해 놓고 말도 없이 사람부터 이렇게 들이밀면, 부애가 안 나겠습니꺼…어쨌든 이건 경우가 아니지예?" "그래, 그건 니 말이 맞다. 신 부장도 그래 해선 안 되지. 시간 날 때 내가 불러서 이야기해 볼게" "매번 신 부장 말만 듣고 그대로 놔두면 안 될 겁니더. 흥, 언제부터 자기가 도매상 부장이라고 저리 나오는지… 형님도 아시다시피 신부장이 요새 우리들 대하는 기, 영 예전 같지 않습니더. 무시하는 기 한두 번이 아니라예. 하여튼 이번 일은 형님 말대로 따르겠지만, 계속 저대로 놔두시면 안 될 낍니다" 둘의 말이 잦아들자 나는 그제야 악어형님을 향해 허리를 정중하게 굽혔다. 내 도바 모서리에 붙은 푸른 청테이프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까지 꼼꼼하게 손봐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내 인사를 받는 것이 부담스러운 지 시선을 다른 데로 향했다.

 


"뭐 이만한 일로 고마워할 것까지야. 하루를 장사해도 이 바닥에 자리 깔면 다 같은 처지 아니겠소. 도와줄 만한 인연이 있으니까 돕는 거지" 나는 그가 덧붙인 `인연`이라는 말이 선뜻 가슴에 와 닿지가 않았다.

 


"기왕 시작한 장사 힘들겠지만 열심히 해보소. 아무래도 많이 배운 사람이라 우리하고 다른 데가…" 그는 끝말을 흐리며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오후로 접어들자 국제시장 골목은 밀려드는 손님들로 한층 북적였다.나도 마음이 급해 셔츠를 양손에 쥐고 계속 흔들어댔다. 손님을 부르려던 말이 입 밖으로 나오다 다시 삼켜졌다. 큰 소리로 호객할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손님을 모아 보기로 궁리를 했다.

 


"사모님, 이 셔츠 한 번만 만져 보이소. 노점 물건이라 해서 모두가 막 줄어드는 거 아입니다. 지금 당장 빨아도 이 원단은 꿈쩍도 안 합니다. 여기 라벨 보이지예. 면 혼방 맞지요. 손끝에 닿는 감부터 다릅니다. 이게 90수 원단이라 촘촘하게 짜여 있어 여러 번 세탁해도 좀처럼 줄지 않습니다. 동대문 물건들, 말은 그럴싸해도 세탁 한 번 해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건 급이 다릅니다. 여기 옆구리 재봉선 한 번 쳐다보이소. 싸구려는 오버로크로 대충 마감해 놓는데, 이건 니혼바리로 꼼꼼하게 박아 놔서 웬만해서는 안 찢어집니더. 이래서 진짜 물건이라 하는 기라예. 내가 시범삼아 이 옷 한 번 당겨볼까예" 나는 손님이 뜸한 틈을 타서 미리 옷을 찢어보는 연습을 해 둔 터였다. 양팔로 셔츠를 잡고 자신있게 힘껏 당겼다.

 


"아저씨, 하지 마요! 그러다 옷 찢어지면 어떡해요?"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급히 손을 뻗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한 번 더 힘을 주어 잡아당겼다.

 


찰칵, 원단이 팽팽하게 버티는 소리가 났다. 몇몇 손님들의 눈이 커졌다.

 


"오, 진짜네. 이 정도면 노점 물건이 아닌데. 꽤 오래 입겠는데?" 여기저기서 긍정적인 수군거림이 번졌다. 그제야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옷 더미를 뒤적이거나 색을 맞춰 보느라 분주해졌다. 노점 앞에 모여드는 발걸음도 눈에 띄게 늘었다.

 


사실 오버로크 정도야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니혼바리`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나도 몰랐다.

 


대학 2학년 때, 의류학 전공 여학생의 리포트를 대신 써준 적이 있었다. 그때 스쳐 지나가듯 본 단어 하나가 순간 떠올랐을 뿐이었다. `90수`라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백화점에서 점원이 하던 말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었다. 손님 한 명이 고개를 갸웃하며 셔츠 안감을 뒤집어 살펴보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잘 보이소. 이건 염색 방식이 다른 제품입니더. 흔한 나염이 아니고, 디지털 프린팅이라예. 색이 오래가고 세탁해도 물 빠짐이 거의 없습니더. 한 철 입고 버리는 물건이랑은 완전히 다릅니다" 사실 그것도 내가 아는 말은 아니었다. 언젠가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을 그대로 꺼냈을 뿐이었다. 나는 일방적으로 떠드는 대신, 사투리를 적당히 섞어가며 손님들에게 말을 건넸다. 다다구리를 치는 억센 호객 소리가 아니라, 은행 근무하던 시절, 창구에서 손님을 응대하듯이 말했다. 그 차분함이 오히려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아저씨, 이 색은 얼마예요?" "사장님, 두 장 사면 좀 깎아주이소" "우리 아들 입히면 딱 맞겠네. 이것도 한 장 주소" 사람들이 셔츠를 집어 들고 값을 묻고 흥정을 시작했다. 노점 골목 여기저기서 "골라, 골라!" 하는 다다구리 소리가 겹쳐 들리고 있었다.그 소란 속에서 내 소리는 작지만 확실하게 손님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세탁은 찬물로 살살 돌리이소. 다림질은 안쪽에서, 너무 센 불 말고 중간 온도로. 그렇게만 하시면 변형 없이 오래 입어실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줄을 서며 웃었다.

 


"이 아저씨, 설명하는 말이 꼭 선생님 같네" "설명 하나 기가 차게 잘하네" 아주머니들이 나의 낯선 말투에 웃음을 터뜨렸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손님들은 곧장 지갑을 열었다. 장터의 소리와 냄새 속에서, 나는 어느새 의류제품 전문가처럼 보이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보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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