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호 소설 <도바 위에 뜬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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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 1959년 함안 출생 |
저녁 무렵이 가까워지자 골목은 더욱 소란스러워져 갔다. 회사 일을 마치고 나온 직장인들, 아이 손을 잡은 젊은 어머니들, 그리고 관광객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내 도바 앞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엔 손님 몇 명이 옷을 만지작거리다 머뭇거렸지만, 내가 한두 마디 설명을 붙이는 사이, 금새 사람들이 빙 둘러서기 시작했다.
"사장님, 이거 사이즈 있습니까?" "이 색깔 말고는 없어요? 좀 더 진한 건요?" 내 손이 더디게 움직이자, 대팔이가 딱하다는 듯 성질을 버럭 냈다.
"야, 이 친구야! 봉투 좀 빨리빨리 챙겨줘라! 안 되겠다. 내가 담을 테니까 니는 손님들에게 돈만 챙겨!" 그의 두툼한 손이 익숙하게 셔츠를 낚아채 비닐봉지에 쑤셔 넣어주었다. 구 씨 형님도 어느새 다가와 잔돈을 대신 챙겨 주고 있었다.
"여기 5천 원 거슬러 드려요. 예, 맞습니다. 줄 서 계시면 곧 담아드립니다" 그런데도 감당이 안 됐다. 줄은 자꾸 늘어났고, 사람들은 물건을 집어 들고는 자기 차례가 오기도 전에 지폐부터 내밀었다.
"아저씨, 나 이거 두 장! 여기 만 원!" "나도 나도, 이거 좀 빨리!" "어머, 이 색깔 금방 있었는데 어디 갔노? 아저씨! 이 색깔 이제 더 없어요?" "죄송합니다. 오늘 딱 이백 장 한정이라, 이제 색깔이 문제가 아니라 남은 것들도 곧 바닥 납니다" 내가 덧붙인 그 한마디가 손님들의 구매 열기에 불을 질렀다. 북새통이 따로 없었다. 비좁은 골목을 지나치던 행인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왔고, 그 호기심이 또 다른 손님들을 끌어당겼다.
내가 허둥대며 돈을 챙기지 못하자, 암달러 아주머니가 도바 위로 성큼 올라서더니, 거스름돈을 능숙하게 집어 손님들 손에 쥐어주기 시작했다. 대팔이와 구 씨 형님은 연신 비닐봉지에 셔츠를 담아 신나게 건네주고 있었다.
"사장님, 이럴 때는 대충이라도 빨리빨리 해야 된다니까요. 여기요, 이거 봉투!" "아이고, 이러다 금방 다 떨어지겠네!" "지금 안사면 못 사겠네. 얼른 주세요!" 그렇게 폭발하듯, 셔츠는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해가 기울기 전에 포대 두 개가 완전히 바닥을 드러냈다. 이백 장이 모두 팔렸다.
골목 한쪽에 비켜서서 지폐를 세기 시작했다. 손이 조금 떨렸다. 가로등 불빛 아래서 만 원짜리가 한 장, 두 장 내 손가락을 넘어갔다. 백만 원. 오늘 하루 내 두 손으로 만들어낸 돈이었다.
한낮의 땀과 소란 속에서 눌려 있던 무거움이 한순간에 걷히는 듯했다. 은행원 시절, 나는 규정과 수치, 출근부 도장의 질서 정연한 나열 속에서 급여를 받았다. 신문사에 있을 때는 남의 사고와 불행을 비집고 글을 썼고, 데스크의 지시를 받아가며 기사를 작성해 월급을 수령했다. 그때의 돈은 정해진 틀 안에서 흘러 들어온 것이었다. 어쨌든 출근만 하면 주어지는 돈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지폐는 달랐다. 누군가의 필요가 내 손길을 불러냈고, 그 대가가 내 눈앞에서 땀과 함께 쌓여 있었다.
도바를 정리하고 대팔이와 함께 악어 형님을 찾아갔다. 단 하루 만에 내 합판은 이미 금이 가고 찌그러져 있었다. 들고 가기가 민망했다. 그런데 그는 이미 이런 일을 겪어본 사람처럼, 미리 대비를 해놓고 있었다.
악어형님의 노점 옆에는 반들반들 윤이 나는 새 합판 두 장이 세워져 있었다. 내 합판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두꺼웠다. 검정 페인트로 곱게 칠해져 있었고, 그 위에 니스를 듬뿍 발라 말려놓은 상태였다. 인근 점포의 조명 불빛에 합판 표면은 옻칠이라도 한 것처럼 싱싱한 광택을 발하고 있었다.
"이제 판대기 걱정은 하지 마소. 장사란 게 물건만이 아니라, 판대기가 절반이요. 판이 무너지면, 장사도 같이 무너지는 기라" 악어형님은 자신이 만든 도바를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보소, 오늘 첫날부터 거기 손님 붙는 거 보니, 며칠 안에 자리 잡을 기세요. 판은 내가 준비했으니, 이제 나머지는 거기 몫이야" 나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침에 욕을 퍼붓던 대팔이가 결국은 손님들 앞에서 내 편이 되어 주었고, 구 씨 형님은 말없이 잔돈을 챙겨 주었다. 달러 아주머니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바 위로 올라와 주었고, 김밥 장사 아주머니들은 행여 내가 점심이라도 굶을까 봐 걱정을 했다. 은행 다니던 시절, 신문 기자로 취재를 다니던 때도, 이런 마음 씀씀이를 받아 본 적은 없었다. 나는 일 년 이상, 혼자라고 생각하며 가족은 물론이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왔다. 그런데 무뚝뚝하지만 남의 일처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시장 안에 있었다.
그날 밤 늦은 시간, 신 부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성호 씨, 오늘 물건 전부 다 팔았다면서? 정말 대단해요. 내일 물건은 내가 어떻게 하든 양껏 구해 줄 테니 장사에만 신경 쓰세요" 그의 말투가 평소와 달리 약간 들떠 있었다.
다음날 아침, 구 씨 형님과 대팔이와 나, 우리 셋이 재첩국 할머니 좌판 앞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대팔아, 고마 술꾼들에겐 재첩국수가 최고다. 이기 술에 찌든 간에는 직빵인 기라. 마늘하고 국산 고춧가루가 국물과 어우러져 쓰린 속을 확 풀어준다 아이가" 순이 할머니라는 이름보다 욕쟁이 할매라는 별명이 더 잘 통한다는 먹자 골목 최고 연장자였다. 그녀가 말할 때 마다 큰 입에서 쉴 새 없이 침이 튀었다. 우리는 슬그머니 얼굴을 돌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재첩국수 장수들이 오전 열 시쯤 장사를 마치면 그 자리를 재빨리 김밥 아주머니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저녁까지 장사한다. 이렇게 좁은 자리 하나로 여름엔 땡볕 아래, 겨울엔 칼바람을 맞으며 여러 집이 먹고 살았을 것이다.
"대팔아, 너거들 간암 3기 인형 장수 유 씨 알제? 그 양반이 3년을 하루같이 우리 집 재첩국수만 먹었다 아이가. 그라고, 병이 나았다는 소리 못 들었나? 항암 치료도 안 된다는 사람을 이 국물이 살린 기라" 속이 쓰려 할머니 말이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김 오르는 국수 사발을 부랴부랴 받아들고 한 젓가락 삼키는 순간, 등 뒤에서 중년남자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침부터 국수로 속을 푸네요! 어제 세 분이 의기투합하여 꽤 달렸나 봅니다" 신 부장이 싱글벙글 웃으며 반가운 표정으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함께 온 트럭 기사에게 그가 손가락으로 지시했다.
"차 맨 뒤에 실은 여섯 푸대, 저 도바 위에 모두 갖다 놓으세요" 신 부장이 가져온 셔츠들은 겉보기엔 그럴듯했다. 나일론 끈을 풀고 안을 대충 훑어보자, 기대와는 조금씩 어긋나는 것들이 제법 눈에 들어왔다. 그는 우리의 표정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능청스레 말했다.
"지금 부산시내 다 뒤져도 셔츠는 구하려고 해도 없어요. 이게 끝물이에요. 어제 밤부터 아침까지 셔츠 도매업자들을 싹 다 뒤져 남은 것 모조리 긁어왔어요" 세련된 서울 말씨였다. 그는 평소 서울이 고향이라며 주위사람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가 성급히 말을 할 때, 호남 방언이 간혹 섞였다는 것을 나는 진즉에 알고 있었다. "포장상태 좀 안 좋은 건 밑에 깔고, 그 위에는 괜찮은 거랑 대충 섞어 내놓으세요. 손님들 눈에는 그게 그거예요" 그 말을 끝으로 신부장은 서둘러 트럭을 타고 떠나버렸다. 셔츠를 포장한 투명 비닐 포장지는 새 것과 달리 쭈글쭈글 늘어나 있었다. 흰 셔츠는 미미하게 색이 바래 있었다. 감색과 보라 계열은 어제 마지막까지 팔리지 않다가 겨우 팔아치웠던 색상들이었다. 손님들이 자주 찾는 100이나 105 사이즈는 거의 없었고, 110 이상 대짜 사이즈와 95 이하 스몰 사이즈가 갖고 온 포대의 절반 이상이었다.
구 씨 아저씨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이고, 성호 씨, 딱 보니 이거 전부 팔다 남은 거다. 신 부장 그 인간이 물 타기 했는기라" 물건을 뒤적거리던 대팔이도 씩씩대며 말했다. "형님, 이런 쓰레기 가지고 우찌 장사하겠습니꺼! 시발, 신 부장이 성호가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완전 덮어씌우는 장면 아입니꺼?" 구 씨 형님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성호야, 니 오늘 장사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선금 준 것도 아니니, 차라리 이대로 반품해버려라. 고마 하루, 이틀 쉬면서 다른 물건들 찾아보는 게 낫겠다" 두 사람의 예민한 반응에 나도 무언가 잘못됐단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나 어제 딱 하루 장사하고 바로 그만두기는 싫었다. "걱정 마세요. 신 부장이 내건 조건이 좋습니다. 전량 외상에 반품 보장, 거기다 마진 60퍼센트 보장. 괜찮지 않습니까? 오늘 하루 시험해 보고, 안 되면 그때 가서 전량 도로 가져가라 하면 어떻겠습니까" 자신 있게 말을 했지만, 속은 편치 않았다. 구 씨 형님은 도바 위로 하나 둘 깔리는 셔츠들을 불안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