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호 소설 <도바 위에 뜬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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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 1959년 함안 출생 |
"역시 안 되는 건가! 혹시나 신부장이 반품을 받아 주지 않으면 재고는 어떻게 해야 하나" 목구멍을 넘어가는 담배 맛이 쓰게 느껴졌다.
"오늘 장사는 어떻소? 새로 만든 도바는 튼튼하지요?"
어느새 악어 형님이 바로 내 옆에 와서 씩 웃고 있었다. 입가에 걸린 웃음이 나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근데 도바를 이런 식으로 깔면 매출이 잘 안 올라요. 어제는 첫날이라 운 빨이 있었던 거고. 손님들도 거기가 초보인 줄 딱 알아보고 동정심에서 팔아 주는 것도 있었을 거요"
"그러면 어떻게…"
"나 같으면 도바를 이렇게 한 줄, 일( 一)자로 안 깔지요"
악어 형님이 팔짱을 낀 채 도바를 훑어보며 말했다.
"어제 우리 도바 봤지요? 청바지 팔고 있는 도바인데, 여기 도바하고 뭐가 다르데요?"
"거기는 도바 형태가 기역자형태로 돼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잘 보셨네. 바로 그거요. 액세서리나 양말 같은 싸구려 물건은 손님들이 고르기 쉽게 일자로 벌려 놔야 합니다. 그런데 5천 원 이상 가는 중저가 물건들은 손님들도 살까 말까 잠깐 망설이거든요. 아무래도 안사고 그냥 갈 확률이 높아지겠지요? 손님이 가버리면 어찌 팔겠소? 일단 물건을 팔려면 우선 살(손님)들이 많이 붙어야 할 것 아니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 너무 일목요연하게 배열해 놓으면 안 돼요. 배열이 복잡해야 물건 고르는 데 시간도 걸리고, 물건을 찾다가 보면 그 사이에 손님들도 살 의욕이 더 많이 생긴다 말입니다"
"예, 듣고 보니 일리있는 말씀이십니다" "자, 비켜보소. 내가 온 김에 다시 도바를 배치해 줄 테니"
악어 형님은 어제 본인이 내게 주었던 판과 자기가 갖고 온 합판을 추가하여 도바 형태를 디귿(ㄷ) 자 모양으로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리고 가운데 안으로 움푹 들어간 자리에 나를 서게 하고 말했다.
"자! 이렇게 하면 우측에서 오는 손님들에게 물건들이 똑바로 보이고 옆으로 지나치는 손님들 시선도 중앙으로 집중이 잘 될 것 아니요. 이제부터 장사하기가 훨씬 수월할 거요"
한참 뒤 형님하고 꽤 친해졌을 무렵, 그날 일에 대해 물어보았다.
"형님, 다른 노점상들 도바는 그대로 두고 하필 왜 내게만 디귿자 형태로 만들어 주었습니까?"
형님은 약간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라. 근데 아우, 너는 초보라 첨부터 좋은 버릇부터 들여 놔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니를 처음 봤을 때 콧대가 똑 바로 서 있는 게 옆모습이 꽤 돋보이고 인상적이더라. 디귿자는 손님들의 시선이 정면보다 옆얼굴에 집중하게 되거든. 그날 순간적으로 디귿자 도바가 네게 맞겠다는 감이 확 오더라. 사실 이것도 장사 비법이라 하면 비법 아니겠니?"
그는 귀띔하듯 덧붙였다.
"디귿자 배열의 진짜 장점은 손님들이 서로 마주보도록 해서 경쟁 심리를 이용하는 기라. 저 사람 사기 전에 내가 먼저 좋은 것 골라 집어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 말이지"
그날 악어 형님은 도바를 재배치하고 난 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근데 성호씨, 오늘 물건들, 때깔이 어제보다 좀 많이 떨어지네. 팔기가 조금 어렵겠는걸!"
걱정스러운 말투였지만 이내 그의 입매가 다시 씨익 올라갔다.
"속옷장수는 입으로 팔고, 나막신 장수는 얼굴로 판다는 장사꾼 말이 있어요. 비록 노점을 하더라도 본인만의 철학이 있어야 이 자리서 계속 버틸 수 있을 거요. 암, 장사꾼이라면 쓰레기도 상품으로 팔 수 있어야 하는 거요"
그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이만한 일로 기죽지 마소. 진짜 장사는 물건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거요"
그 말을 남기고 형님은 자기 도바로 되돌아갔다.
오후 세 시 피크 타임이 시작되었다. 장사는 어제보다 반응이 훨씬 떨어졌다. 쉬지 않고 당가를 쳤지만 손님들은 모여들 기미가 없었다. 경험 있는 노점상들이 장사가 잘되는 조건으로 꼽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첫째가 도바, 둘째가 레다, 마지막 셋째가 당가이다. 도바가 좋아야 한다는 말은 장사하는 입지장소가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곳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다음은 아무리 말 빨이 좋아도 레다, 즉 상품이 좋지 않으면 팔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오늘은 상품이 좋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세 시에서 네 시 반, 이 핫타임을 놓치면 장사는 끝이다. 어쩌면 오늘을 마지막으로 나는 이 노점 바닥에서도 밀려날 수 있겠다는 절박감이 들었다. 과감하게 판을 다시 벌이기로 했다.
일단 대팔이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 그의 노점 자리 일부를 빌려 도바를 크게 보이도록 확장하여 배치했다. 그리고 확장된 도바 위에 셔츠 수백 장을 한꺼번에 쏟아놓았다. 보기 좋도록 질서 있게 배열한 것을 허물고 무더기로 수북이 쏟아 부어 놓았다.
비닐 포장 안에 든 셔츠들이 서로 뒤엉켜 무질서하게 흘러내렸지만, 그 거대한 물량 자체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대번에 붙잡았다.
"와, 이 집 물건 봐라. 일반 매장보다 물건이 훨씬 더 많네"
"애! 이 정도면 백화점도 울고 가겠다. 물건들 모두가 공장에서 오늘 바로 출하된 것 같네"
지나치는 행인들의 감탄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일반 매장의 옷걸이에 질서정연하게 걸려 있는 상품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내 도바는 무너질 듯 쏟아져 있는 의류 상품의 `거대한 산`이었다. 그러다보니 다양하지 못한 색상과 사이즈들, 산더미 같은 셔츠 속에서 손님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쉽게 찾기가 힘들었다. 나는 규모의 과시로 손님들의 시선을 끌고 도바 체류 시간을 길게 만들었다. 누군가가 옷을 집어 들면 옆 사람도 덩달아 손을 뻗어 같은 더미를 뒤적였다.
"에이! 왜 이렇게 사이즈 찾기가 힘들어. 아저씨 레드 색상 105 없어요? 좀 찾아줘보소" 덩치 큰 중년 남자가 한동안 옷을 뒤적거리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예, 손님. 죄송합니다. 저 역시 상품이 많다 보니 찾으시는 제품이 어디 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상품은 반드시 있습니다. 조금 더 뒤져보세요. 단지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뿐입니다"
나는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크게 소리쳤다.
"자, 저쪽 손님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당첨되셨습니다! 예! 이쪽 손님! 현재 두 개째 당첨입니다! 이 많은 상품들 중에 본인이 찾으시는 색상, 사이즈! 정말 찾기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저가로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당첨`이라는 말은 손님들의 옷 찾기 게임 심리를 자극하는 방아쇠 멘트가 되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당첨?`이라는 말에 빠르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나는 오른 손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붙이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구부려 빨대기 모양을 만들어 확성기에 대고 소리치듯 더 크고 빠른 톤으로 말을 이어갔다.
"본인이 원하는 물건을 찾는 바로 이 자리! 즉석에서 돈을 벌어가는 자리! 오늘은 영신어패럴 특별 이벤트 데이입니다! 시중 가격 이만 원, 삼만 원 하는 고가의 영신어패럴 셔츠! 절반에 또 그 절반 가격! 오늘만 단돈 오천 원입니다!"
사람들이 조금 모이자 나는 배짱식 판매를 시작했다.
"단, 오늘 이 자리 입장료가 만 원입니다! 빠른 자금 회전을 위해 두 장 이상 구입하시는 분에 즉 만 원 이상 구입 하는 분에 한하여 판매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부산 사하구 소재! 부산 보세가공의 산 역사! 한국은행 지정 유망 중소기업! 여러분의 이웃이 근무하는 바로 영신어패럴입니다! 오늘 영신 어패럴이 갑작스런 자금 경색으로 2차 부도를 막지 못하면 결국 문을 닫게 됩니다. 바로 폐업입니다. 많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의 관심으로 삼십년 역사의 유망 중소기업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때 대팔이 부인이 맞장구를 쳤다. "그래, 회사는 살려야지. 우리가 조금씩이라도 팔아주면 회사가 살지 않겠어요?"
사람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누군가 지갑을 여는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는 사람이 늘어나자 대팔이가 바람잡이 역할을 자청했다. 그는 만 원짜리 지폐 수십 장을 손에 쥐고 손님들 보란 듯이 일부러 흔들며 나를 보고 소리쳤다.
"부장님! 여기 석 장요. 빨리 담아주세요!"
암달러 아주머니도 옆에서 거들었다. "저는 넉 장 샀어요! 한 장 값에 서너 장이면 이번 봄 내내 입고도 남겠다!"
한 아주머니가 대팔이에게 부탁조로 말했다. "저기요, 아저씨, 내가 여러 장 샀는데 조금만 빼 주면 안 되겠십니꺼?"
대팔이가 아주머니의 말을 받아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사모님 예, 와 이캅니꺼? 나는 아직 넣지도 안 했는데 뭘 빼 달라카십니까!" 순간 옆에 있던 사람이 쿡쿡하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곧이어 나머지 사람들도 대팔이의 능청스런 대꾸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웃음 속에서 지갑이 열렸다. 노점에선 손님이 웃어야 돈이 들어온다는 악어 형님의 말이 맞았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허리춤 전대는 이미 불룩해졌다. 마감을 하고 보니 전날의 두 배가 넘는 사백 장 가까운 셔츠가 팔려 있었다.
"이야, 하루에 이백만 원어치라니" 구 씨 형님이 감탄했다.
대팔이는 웃으며 말했다. "성호야, 니 진짜 너무 잘한데이. 손님들 심리를 기가 막히게 이용하더구만"
정산 후 나는 수익의 절반을 대팔이와 구 씨 형님에게 내밀었다. 두 사람 모두 몇 번 사양하다가 받아 들었다. 어제처럼 술이나 한잔 하고 집에 가자는 내말을 대팔이가 가로막았다.
"성호야, 술은 조금 있다가 하기로 하고 먼저 왕비다방에 좀 들렀다 가자. 오늘 거기서 노점상들 회합이 있다"
낯선 사람들 틈에 끼는 건 부담스러웠지만, `악어 형님도 온다`는 구씨 형님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날, 나는 앞으로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폭풍의 눈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