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호 소설 <도바 위에 뜬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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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 1959년 함안 출생 |
창선파출소 뒷골목은 해가 질수록 오히려 살아났다. 낮 동안 의류와 생필품을 팔던 리어카들이 물러나면, 그 자리에 어묵, 떡볶이, 오징어튀김, 부추전을 파는 리어카들이 기다렸다는 듯 빽빽하게 들어찼다. 인형, 장신구, 가방, 벨트, 스카프가 좌판 위에 늘어서고, 오피스걸과 여대생과 관광객들이 그 사이를 누볐다. 밤의 골목은 낮보다 훨씬 젊었다.
반면 세명약국 골목은 밤만 되면 딴 세상이 됐다. 낮의 소란이 거짓말처럼 걷히고, 포장마차 불빛만 천막 틈새로 가느다랗게 새어 나왔다. 가락국수 국물 냄새와 소주 냄새가 어둠 속에 낮게 깔렸다.
그 적막한 골목 한가운데, 5층짜리 건물 하나가 불을 환히 밝히고 서 있었다. 주변 낮은 점포들 사이에서 혼자만 우뚝 솟아, 어둠 속 등대처럼 보였다. 2층에는 `왕비다방`, 3층 대형 유리창에는 붉은 시트지로 `사교댄스`라고 크게 붙어 있었다. 하지만 건물 꼴은 `왕비`라는 이름이 민망할 만큼 허름했다. 시멘트 벽 페인트는 군데군데 벗겨졌고, 외벽에는 불 꺼진 낡은 간판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 화려한 이름과 볼품없는 몰골 사이의 간극이, 이 골목 자체를 닮아 있었다.
1층 국밥집 안에서는 전대를 찬 노점상들이 수육에 소주를 기울이며 언성을 높이고 있었고, 옆 가방 직판점에는 광복동에서부터 미로 같은 골목을 용케 따라온 관광객들이 핸드백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곰팡내와 접착제 냄새가 동시에 코를 찔렀다. 지하 어딘가에서 재봉틀 소리가 계단을 타고 요란하게 울려왔다. 계단 벽에 붙은 `미창가방` 아크릴 간판이 흔들리는 전구 빛에 가물거렸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대팔이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염소대가리라는 리어카 보관소장이 이 건물주인데, 워낙 짠돌이라. 귀신 나올 만큼 어둡다고 몇 번을 말해도 형광등 고칠 생각을 안 한다 안카나. 그러면서 공용 전기료는 또박또박 받아간다카이"
"그러다 누가 계단에서 다치면 건물주가 책임져야 하지 않나"
내가 건성으로 받아넘기자 대팔이가 코웃음을 쳤다.
"흥! 그 인간이 그걸 모르겠나. 다 돈 없는 사람들 깔보고 그러는 기다. 4층, 5층은 칸막이 쳐서 방이랍시고 노점상들한테 비싸게 임대해 주는데, 한 집에 불이라도 나면 말캉 다 죽는 기라"
그 말을 듣고서야 창가마다 널린 빨래며 이불들이 이해되었다. 계단 끝에 다다를 즈음, 연탄보일러 가스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왕비다방` 유리문 너머로 7, 80년대 팝송이 흘러나왔다. 대팔이가 문손잡이를 잡으며 말했다.
"어서 들어가자, 성호야. 다들 기다린다"
문을 열자 훈훈한 공기와 함께 담배 연기가 얼굴을 감쌌다. 다방 안은 예상보다 넓었다. 열댓 개 테이블에 중년 남자들이 절반쯤 차 있었고, 한쪽 구석의 오디오에서는 올리비아 뉴턴 존인지 앤 머레이인지 모를 팝송이 잔잔하게 흘렀다. 대팔이는 익숙한 듯 머뭇거림 없이 안쪽을 향해 걸어갔다.
◆소피아로렌을 닮은 여인
마담은 처음 보는 순간부터 시선을 붙잡는 여자였다. 영숙과의 첫 만남이었다.
서른 중반쯤 되어 보이는 그녀는 후리후리한 키에 허리와 어깨를 꼿꼿이 세우고 있어, 다방 안을 가로지르는 걸음 하나에도 무게가 실렸다. 연푸른 한복 위로 뒤로 말아 올린 머리, 금빛 비녀가 흔들림 없이 꽂혀 있었다.
둥근 계란형 얼굴에 턱 선이 또렷했고, 눈은 약간 치켜 올라간 형태였다. 정면으로 마주치는 순간 그 눈매가 상대방을 꿰뚫는 듯해서, 무심코 시선을 피하게 만들었다. 입술은 두툼하다기보다 도톰한 편이었고, 말할 때마다 윤곽이 선명하게 살아났다. 약간 도드라진 광대뼈가 그 눈매와 맞물리면서, 온화해 보이는 인상 어딘가에 묘하게 날이 서 있었다. 예술가이거나, 아니라면 이런 바닥에서 판을 쥐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 한마디로 소피아 로렌이라는 외국영화배우를 연상하는 그런 얼굴이었다.
"어서 오세요. 오늘도 늦게까지 고생 많았지요"
그녀가 웃음 띤 얼굴로 인사를 했다. 하지만 여느 다방 마담들처럼 값싸게 보이지 않는 미소였다. 그녀는 내 맞은편 자리에 앉으려다 찻잔만 내려놓고 몸을 돌렸다. 대팔이는 신 부장에 대한 불만을 연신 쏟아내고 있었지만, 내 눈은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좇고 있었다.
그때 다방 문이 열렸다. 묵직한 발소리가 먼저 들어오고, 악어 형님이 덩치 좋은 젊은 남자 셋을 달고 들어섰다. 대팔이가 손을 번쩍 흔들었고, 구 씨 형님은 말없이 자리를 비켜 주었다.
◆좌담회
형님이 들어서자 술기운에 오르내리던 목소리들이 하나둘 잦아들었다. 탁자 끝에서 제 패거리끼리 떠들던 오십 대 남자가 이쪽을 흘겨보며 퉁명스레 내뱉었다.
"오늘 신참 들어왔다 하던데, 본인 소개는 안 하는 기요?"
악어 형님이 턱으로 나를 가리켰다.
"이 사람은 성호라 카는데, 셔츠 쪽으로 시작했다. 신 부장 통해서 물건 받고 있고, 노점은 처음이라 하니 다들 잘 좀 챙겨주소"
그제야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청바지를 판다는 이 씨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어쨌든 새로 온 동생, 반갑다. 근데 셔츠면 원단이 어디 건데? 린넬인가, 옥스퍼드? 아니면 사카리?"
웃음이 섞인 질문이었지만, 낮은 단가의 새 소스를 바로 캐내려는 장사꾼의 감각이 그 안에 날카롭게 살아 있었다.
내가 머뭇거리자 액세서리 노점상 김 사장이 치고 들어왔다.
"에이, 이 씨는 또. 신참인데 벌써 원단 감별이요. 그래도 이건 알아둬야 해요, 아우님. 요즘 손님들, 귀는 얇아도 눈은 매섭다 아이가. 라벨이랑 원단 뽀록나면 그 자리서 욕먹는 거요"
탁자 한쪽에서 땅콩 장수가 술잔을 들고 코웃음을 쳤다.
"라벨 붙인다고 속나. 요즘 소비자들은 귀신이야. 구라 쳐도 먹히던 시대가 차라리 좋았지. 나도 한때 구포 장에서 의류로 제일 잘 나갔는데" 구 씨 형님이 손을 내저었다.
"구포 얘기 인자 좀 작작해라. 다 지난 일 아이가. 물건이든 사람이든 한철이다, 한철"
이야기는 자연스레 서면 쪽으로 흘렀다. 김 사장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입을 열었다.
"서면 지하상가 말이야. 이번에 수입 신발이 대박 났다 카더라. 이태원발 물건인데 부산 쪽은 서면만 물량 잡았다 안 카나. 하루 매출이 몇 백만 원까지 찍는다고. 도매상 놈들이 국제시장은 아예 패싱한 거지"
청바지 이 씨가 턱을 괴며 내뱉었다.
"다 매출 때문이야. 도매상들은 큰 상권 먼저다. 국제시장은 사람은 끓어도 영세하니까, 잘 나가는 신상은 서면이나 창원, 울산으로 먼저 밀어버린다 카더라"
팥빙수 장수 은 씨가 한숨부터 내쉬었다.
"내 말 좀 들어보이소. 얼음 갈고 팔아봤자 원재료 값에 남는 게 없어요. 거기다 요즘 젊은 것들은 빙수 대신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만 찾는다 아이가. 우리 같은 올드 장사는 인자 끝인 기라"
무거운 한숨이 자리를 덮었다. 악어 형님이 두툼한 손으로 탁자를 탁 두드렸다.
"빙수야, 마. 궁상스런 소리 집어치워라. 내일 걱정을 오늘 끌어다 쓰면 뭐가 남노. 우리 같은 노점상들은 하루하루 버티는 게 장땡이다. 답답하면 머리 맞대고 한 개라도 더 팔 궁리나 해"
형님의 한마디에 분위기가 살짝 들렸다. 형님이 한 박자 쉬고 말을 이었다.
"오늘 낮에 눈에 띄는 거 있었나? 있으면 얘기해 봐라"
형님을 따라 들어온 젊은 남자 중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살짝 굽혔다.
"점심 때 파출소 옆에 관광버스가 두 대 섰습니다. 날 풀리면 더 많이 들어올 텐데, 장사는 나아지겠지만 단속도 그만큼 조여올 겁니다. 저녁 무렵까지 사람이 꾸준히 흘러들었고, 당면이나 부추전 같은 리어카 음식은 평소보다 두 배 가까이 빠졌습니다. 반면 대각사 뒤편은 오전부터 짝퉁 상표 단속반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얼쩡거리더니 손님 발길도 뚝 끊겼습니다"
악어 형님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그거, 나도 들었다. 다음 주에 단속반이 치고 들어올 거라는 말이 벌써 돌고 있어. 증거 확보하러 지금부터 돌아다니는 거일 수 있으니, 이미테이션 파는 데는 당분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형님의 목소리가 낮게 깔리자,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모였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다방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누군가 술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저마다 속으로 자기 자리를 한 번씩 되짚어보는 눈치였다. 이 바닥에서 조심이란 말은 곧 생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