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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호 소설 <도바 위에 뜬 별>
제3회 - 3. 세상 밖에서 길을 잃고 마음 안에서 자리를 잃어

손병호 소설 <도바 위에 뜬 별>
제3회 - 3. 세상 밖에서 길을 잃고 마음 안에서 자리를 잃어

창원일보 | 입력 : 2026/05/2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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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 1959년 함안 출생    

◆밀양 오일장의 사람들

 

밀양은 높은 산과 너른 들이 한데 엉겨 사는 고장이었다. 북쪽으로 눈을 들면 하늘 끝에 걸린 산맥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그 산줄기들이 맞닿아 만들어낸 골짜기마다 안개가 일고, 물길이 흘러내려 강을 이루며 밀양이라는 내륙의 작은 도시를 감고 지나간다. 시월의 어느 이른 아침, 내가 밀양 장터에 막 도착 했을 때, 산 아래 골짜기마다 뭉쳐 있던 먹물 같은 어둠들이 조금씩 묽어지고 있었다. 무더기로 덩이져 있었을 때는 분명 짙은 암흑색이었지만 풀어질 때는 서서히 청회색으로 변해 갔다.그것은 마치 밀양의 산들이 밤새 게워 낸 하늘의 빛을 골짜기의 영령들이 자기 것인 양 모아 두었다가 아침이 오면 시나브로 다시 세상 밖으로 슬금슬금 돌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멀리 산 아래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작은 마을들의 형태가 드러나기 시작할 때 쯤, 리어카와 트럭들이 하나 둘 시장 골목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바야흐로 5일마다 열리는 인근에서 가장 큰 밀양장이 시작될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내 노점 옆 자리를 차지한 이들은 산골에서 버섯 꾸러미를 들고 내려온 일흔 살 가량의 노인 부부였다. 그들은 내 도바 맞은편에 천막용 푸른색 비닐 커버를 인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돗자리를 편 뒤 버섯을 쏟아놓았다. 값비싼 자연산 송이버섯은 대바구니에 담아 따로 내어놓고, 일반 버섯과 말린 표고버섯들을 바닥에 그냥 수북이 쌓아 올렸다.

 

버섯 장수 옆에는 단감을 파는 노점이 들어섰다. 밝은 주황빛 단감이 산처럼 쌓였다. 육십 대 초반의 남자와 아들인 듯 이십 대 후반의 청년이 감꼭지를 다듬느라 분주했다. 단감 자루 밑에는 곶감용으로 따로 빼 둔 모양 빠진 감들이 함부로 굴러다녔다.

 

청도에서 새벽 기차로 왔다는 그 노인은 함께 온 청년이 싫어하는 기색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건 홍시감이고, 저건 곶감용이요" 하며 장을 보러 온 시골 농부에게 맛을 보라고 귀찮을 정도로 권했다.

 

건너 편, 영남슈퍼 앞 매대 위에 오미자 향이 퍼졌다. 빨갛게 말린 열매들이 바구니마다 차곡차곡 담겨 있었고, 그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사람들 옷자락이 서로 스칠 만큼 인파가 복잡했다.

 

한 아주머니가 말린 대추를 한 줌 집어 들고 노점주인에게 말을 붙였다.

 

"아저씨, 대추가 껍질이 얇고 알이 많이 작네. 이게 국산 맞어요?"

 

국산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가격을 낮춰 보려는 수작이었다. 상인은 아주머니의 수작에 웃음 띤 얼굴로 대추 한 알을 깨물어 보여주었다.

 

장터 길목 끝 외진 자리에 도토리묵 장사 창녕댁 아주머니가 자기와 비슷한 나이또래의 오십대 초반의 더덕 장수 무안댁과 함께 장사는 제쳐 둔 채 서로 시어머니 흉들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와중에도 손님들이 지나갈 때마다 "도도리 묵 사이소", "국산 더덕이 많이 쌉니더" 하는 말을 놓치는 법이 없었다.

 

내가 도바를 펴고 옷가지를 거의 다 정리했을 즈음, 동쪽 하늘의 햇살이 얇은 부챗살처럼 퍼지며 시장 곳곳을 비추기 시작했다. 천막 천에는 밤새 스며든 냉기가 아직 남아 있었고, 손끝에 닿는 비닐은 차가웠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희미하게 흩어졌다. 겨울을 재촉하는 한기 섞인 바람이 장터 골목 안을 휘감고 지나갔다.

 

골목 안쪽에는 생닭과 오리를 파는 상인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뜨거운 물과 이제 막 세상과 이별한 닭의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냉동대구를 파는 노점 천막 안에는 큰 원목 도마 위에 연신 `탁탁` 칼 부딪히는 소리가 연달아 났고, 장정들의 목청이 그 리듬에 맞춰 터졌다.

 

"펄펄 살아 있는 놈이요, 바로 바로 잡아 드려요!"

 

냉동 생선임에도 행인들의 눈길을 끌려는 우스개 소리였다. 그 옆에는 생선을 손질하는 여인들이 손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비린내에 섞여 멸치젓 냄새가 퍼지고, 그 위로 장터 아낙들의 흥정하는 목소리가 오르내렸다.

 

잠시 뒤 시외버스가 툴툴거리며 들어와 터미널 앞에 한 무리의 장꾼들을 쏟아냈다. 터미널 안쪽까지 침범한 토박이 장사꾼들의 좌판들에는 고추, 대파, 마늘, 무, 배추 등 농산물이 빼곡했다. 영남알프스 고지대 산비탈에서 갓 려온 싱싱한 고랭지 배추에는 흙이 그대로 묻어 있었고, 손님들은 줄기 굵은 것을 골라 그들이 갖고 온 큰 비닐자루에 여러 통 씩 담아갔다. 그 옆에는 솥뚜껑 위에 전을 부치는 노파, 막걸리를 종이컵에 따라 손님에게 건네는 장돌뱅이, 양념된 돼지껍질을 굽는 참숯 불길이 화로에서 거세게 일렁였다. 사람들은 흥정했고, 행인들은 떠밀리듯 움직였다. 1톤 트럭 짐칸 위에 박박 머리의 노점상 남자가 확성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밀양 단장면 대추, 얼음골 사과. 모두 모두 떠리미요! 오늘이 마지막 물량이요!"

 

시끄러운 소리에 아이가 울고, 어디선가 단속 호루라기 소리가 길게 울렸다가 사라졌다.

 

긴장된 손길로 도바 위에 청바지를 풀어놓자 의외로 많은 손님들이 몰려왔다. 젊은 아낙네들이 앞 다투어 바지를 허리에 대어보고, 여학생들이 친구들과 웃으며 사이즈를 물었다. 

 

첫 날부터 대박이었다. 왕비다방 마담 영숙 씨 말 대로 식당주인 여자의 친척들이 매출에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장이 끝나갈 무렵, 주변 장사꾼들과 토박이 장사 할머니들이 우루루 몰려와 거세게 항의했다.

 

"우리가 몇십 년을 여기서 장사했는데, 어디서 굴러온 지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이 자리서 돈을 다 쓸어 가면 우린 뭐로 먹고 사냐!"

 

그들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억울함이 섞여 있었다. 식당 주인 부부가 중재했지만 상황은 쉽지 않았다. 주인은 그들과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 함부로 내 편을 들 수도 없었다. 결국 다음 장부터는 내 대신 식당 안주인이 옷들을 팔아주기로 합의가 되었다.

 

그 후로 묘한 방식이 자리 잡았다. 장날마다 아주머니가 지나치는 행인은 물론, 친척과 식당 손님들에게 청바지를 팔아주었고, 나는 뒷전에서 물건만 정리하고 돈을 챙겼다. 그래도 수입은 나쁘지 않았다. 아주머니 덕에 단골이 생겼고 매출은 더 안정되었다.나는 주인아저씨에게는 자릿세를 주고, 아주머니에게는 그날 매출에 따라 약간의 수고비를 따로 챙겨 주었다. 그 수입이면 그들의 식당 한 달 임대료를 내고도 남을 만큼이었다. 덕분에 식당 주인부부도 장사 갈 때마다 나를 퍽이나 살뜰하게 대했다.

 

소주를 밥보다 더 좋아하는 식당주인 남자는 나보다 세 살 위, 그의 부인은 나와 동갑이었다. 장이 늦게 끝나는 날이면 우리는 함께 안주를 만들어 소주를 마셨고, 술판이 늦게까지 계속되는 날에는 식당 뒷방에서 자고 다음 날 부산으로 귀가하기도 하였다. 식당 안주인이 혼자 사는 자신의 여동생을 내게 몇 번 만나보라고 권했지만 나는 이대로 사는 게 편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낯선 타지에서 시작한 장사였지만, 어쨋든 나는 그곳에서 또다시 버틸 구멍을 찾은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주위의 노점상 형님들과도 꽤 친해지게 되었다. 그들은 내게 함께 장사 다니자며 다른 오일장을 권했다.

 

"한 사장, 청도장도 괜찮은 편이다. 거기도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합천장은 아직 대형 마트가 없어 장날마다 손님들과 관광객이 엄청 북적인다"

 

"경주장은 수입이 고만고만하다"

 

나는 그들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영남 곳곳의 시골장을 떠돌며 청바지를 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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