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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한 칼럼]
불안은 뇌의 오작동이 아니라, 과열된 생존 본능이다

[신재한 칼럼]
불안은 뇌의 오작동이 아니라, 과열된 생존 본능이다

창원일보 | 입력 : 2026/05/2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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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뇌교육학과 학과장 / 교육부 연구사 역임 / 한국상담학회 노인상담학회 대외협력위원장, 수련감독    

중요한 발표를 앞둔 날 밤이었다.

 

회사원인 민수는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 발표에서 실수하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되었다. "말하다가 버벅거리면 어떡하지?", "팀장님이 실망하면?", "사람들이 나를 무능하다고 생각하면?"이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심장은 점점 빨리 뛰기 시작했고 손바닥에는 땀이 차올랐다. 결국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발표장에 들어간 순간, 그의 몸은 이미 전쟁터에 들어간 상태였다. 목은 바짝 말랐고, 숨은 가빠졌으며,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발표가 끝난 뒤 민수는 자신을 심하게 비난했다.

 

"나는 왜 이렇게 멘탈이 약할까?"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데 왜 나만 이럴까?"

 

하지만 뇌과학은 말한다.

 

그의 문제는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뇌의 경보 시스템이 지나치게 민감해져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우리 뇌에는 `편도체(amygdala)`라는 작은 기관이 있다. 편도체는 위험을 감지하면 즉시 몸 전체에 비상 신호를 보낸다. 심장이 빨리 뛰고, 근육이 긴장하며, 호흡이 가빠지는 이유도 모두 편도체 때문이다. 원래 이 기능은 생존을 위해 만들어졌다. 원시 시대에 맹수를 만나면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대 사회의 뇌가 실제 맹수뿐 아니라 `타인의 시선`까지 위험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상사의 무표정한 얼굴, SNS 속 다른 사람의 성공, 발표장의 시선, 답장이 늦게 오는 메시지까지도 편도체는 위협으로 해석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안전한 상황인데도 몸은 위험에 처한 것처럼 반응한다.

 

심리학자 Daniel Goleman은 이를 `편도체 하이재킹(Amygdala Hijack)`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하면 감정의 뇌가 이성의 뇌보다 먼저 핸들을 빼앗아버리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한 중학생의 사례를 보자.

 

중학교 2학년인 지우(가명)는 수업 시간에 발표만 시키면 얼굴이 빨개졌다. 친구들이 자신을 비웃을 것 같았고, 틀리면 창피당할 것 같았다. 발표 차례가 가까워질수록 배가 아프고 손이 떨렸다. 결국 지우는 화장실에 가겠다고 하거나 아예 학교를 빠지고 싶어했다.

 

부모님은 처음에는 "자신감을 가져", "그 정도도 못 하냐?"고 말했다. 하지만 지우의 문제는 단순한 자신감 부족이 아니었다. 지우의 편도체는 발표 상황을 실제 위험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몸은 이미 "도망쳐야 한다!"고 반응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Joseph LeDoux는 인간의 뇌에는 두 가지 공포 처리 경로가 있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생각과 분석을 거치는 `높은 길(The High Road)`이고, 다른 하나는 생각보다 반응이 먼저 나오는 `낮은 길(The Low Road)`이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것이다.

 

높은 길은 "잠깐, 진짜 위험한 상황인가?"라고 생각한 뒤 반응하는 길이다.

 

반면 낮은 길은 "일단 위험하니까 도망쳐!"라고 즉시 반응하는 길이다.

 

불안이 높은 사람들은 이 낮은 길이 지나치게 빠르게 작동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표정 변화나 작은 실수 가능성만으로도 몸이 비상 상태에 들어간다.

 

그래서 불안한 사람에게 "괜찮아", "진정해"라고 말해도 잘 통하지 않는다. 이미 몸은 위험 상황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은 단순한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의 생존 반응이다.

 

흥미로운 점은 뇌가 `불안`과 `설렘`을 거의 구분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터를 타기 직전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 직전의 몸 상태를 떠올려보자. 심장이 뛰고 손에 땀이 나며 숨이 빨라진다. 몸의 반응은 거의 똑같다. 차이는 오직 뇌의 해석뿐이다.

 

"큰일났다"고 해석하면 불안이 되고 "기대된다"고 해석하면 설렘이 된다.

 

하버드대학교의 Alison Wood Brooks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발표 전 긴장한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말을 하게 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차분하다"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나는 흥분했다"고 말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나는 흥분했다"고 말한 사람들이 더 좋은 발표를 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이미 몸은 심장이 뛰고 에너지가 올라간 상태인데 억지로 "차분해야 해"라고 하면 뇌는 더 혼란스러워진다. 반면 "지금 내 몸이 에너지를 준비하고 있구나"라고 받아들이면 전전두엽이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실제로 한 초등학교 교사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교사인 수진(가명)은 공개수업만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불안했다. 밤에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고, 수업 당일 아침이면 속이 메스꺼웠다. 교실에 들어가면 학생들의 시선만으로도 심장이 뛰었다.

 

수진은 늘 자신을 비난했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할까?"

"교사 체질이 아닌가 보다"

 

하지만 상담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의 문제가 능력 부족이 아니라 `과열된 편도체`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녀는 몸을 안정시키는 연습을 시작했다.

 

아침마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는 호흡을 반복했다. 특히 내쉬는 숨을 길게 하면 미주신경(vagus nerve)이 활성화되면서 자율신경계가 안정된다. 또한 긴장될 때마다 발바닥 감각을 느끼고, 어깨 힘을 천천히 빼는 연습을 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불안의 이름을 바꾸기 시작했다.

 

"심장이 뛴다 → 내 몸이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손이 떨린다 → 중요한 일을 준비 중이다"

"긴장된다 → 잘하고 싶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반복할수록 뇌는 새로운 회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그녀는 작은 성공 경험을 단계적으로 쌓았다. 동료 교사 한 명 앞에서 짧게 발표하고, 이후 소규모 공개수업, 전체 공개수업 순으로 조금씩 도전 범위를 넓혀갔다.

 

몇 달 후 그녀는 여전히 긴장을 느꼈지만 더 이상 불안에 압도되지 않았다. 중요한 변화는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불안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점이었다.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는 먼저 몸을 안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불안은 생각 이전에 몸의 각성 상태이기 때문이다. 긴장될 때는 억지로 생각을 통제하려 하기보다 몸부터 진정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도움이 된다.

 

숨을 4초 동안 들이마시고 6초 동안 천천히 내쉰다. 내쉬는 호흡이 길어질수록 자율신경계는 안정된다. 찬물로 손을 씻거나 천천히 걷는 것도 도움이 된다. 발바닥 감각에 집중하거나 손으로 가슴을 감싸며 심장 박동을 느끼는 것도 편도체 안정에 효과적이다.

 

또한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이름 붙이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지금 불안하다"

"내 몸이 위험하다고 느끼고 있다"

"나는 긴장하고 있다"

 

이렇게 감정을 언어화하면 전전두엽이 활성화되면서 감정 조절 능력이 회복되기 시작한다.

 

생활 습관 역시 중요하다. 수면 부족은 편도체를 과활성화시키기 때문에 충분한 수면은 불안 회복의 핵심이다. 아침 햇빛을 충분히 보는 것은 세로토닌 분비와 생체리듬 안정에 도움을 준다. 반대로 늦은 밤 스마트폰 사용과 과도한 카페인은 뇌를 계속 각성 상태로 유지시켜 불안을 악화시킨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결이다. 불안한 사람들은 종종 혼자 버티려 한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원래 연결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안전한 사람과 함께 웃고 공감받는 경험은 옥시토신을 분비시키고 편도체 활동을 감소시킨다. 결국 회복은 혼자 견디는 힘이 아니라 안전한 관계 속에서 시작된다.

 

불안은 당신이 약하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살아남기 위해 너무 오래 긴장해온 뇌의 흔적일 수 있다. 그러므로 불안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불안에 휘둘리지 않는 새로운 뇌의 회로를 만드는 것이다.

 

뇌는 반복에 따라 변화한다. 몸을 안정시키고 감정을 새롭게 해석하며 작은 성공 경험을 반복적으로 축적할 때 전전두엽은 다시 방향키를 잡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순간 불안은 더 이상 삶을 무너뜨리는 적이 아니라, 우리를 성장시키는 에너지로 바뀌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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