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동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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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해근대역사위원회 위원장 |
이 글은 연세가 많으신 분이 "어리석게 살다가 갈 날이 다가오니 환생이 있는 것인가가 궁금하다"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정리해 본 것이다.
◆환생(還生)이 있다는 것은 전생(前生)도 있다는 것이다.
환생은 인류가 오래전부터 던져온 질문이다. 사람은 죽음 이후에도 무엇인가 이어지는 것이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힌두교와 불교에서는 업(業)에 따라 환생한다고 한다. 현대 과학은 환생을 전생 기억이나 임사체험 등을 통해 연구하고 있다. 죽음학에서는 환생을 `영혼의 이동`이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업과 의식의 흐름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삼국유사>에 김유신은 고구려의 점치는 사람으로 억울하게 죽은 뒤 환생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김대성은 전생에 착한 일을 하지 않아서 가난한 집의 아들로 태어났다가 보시를 하고는 일찍 죽어서 재상 김문량의 아들로 환생하여 불국사는 현생의 부모를 석굴암은 전생의 부모를 기리면서 창건했다는 일화도 있다. 초대 동국대 총장을 역임한 권상로 박사는 전생에는 일자무식의 스님으로 서원을 세워서 수행하다 환생하여 팔만대장경을 모두 해석하는 스님이 되었다. 기독교인이면서 전생 전문가인 벵슨의 <전생 이야기>에는 수 많은 사람들의 환생이야기가 나온다.
◆부처님은 거듭 환생하였다.
불교에서는 모든 생물은 전생의 업보를 안고 살며 그 업보가 사라질 때까지 윤회한다, 즉 환생한다고 한다. 해탈에 이르러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면 윤회를 벗어난다고 한다.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摩耶夫人)은 어느 날 육아지백상(六牙之白象)이 하늘에서 내려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가는 꿈을 꾸게된다. 그 후 마야부인은 룸비니 동산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낳게 된다.
석가모니가 부처가 되기 전의 전생은 흰 코끼리였는데, 육아백상 설화는 다음과 같다. 부처님은 전생에 육아백상으로 산중에서 코끼리 무리를 이끌며 평화롭게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사냥꾼이 코끼리들에게 독화살을 쏜다. 독에 맞은 코끼리들이 고통과 분노로 사냥꾼을 죽이려 하자, 육아백상은 가슴에 화살이 꽂힌 채로 사냥꾼을 보호한다. 다른 코끼리들을 진정시키며 "분노는 또 다른 고통을 낳는다. 우리가 괴로움을 겪더라도 해를 갚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한다.
육아백상은 사냥꾼에게 묻는다. "왜 우리를 쏘았는가?" 사냥꾼은 두려움 속에서 "왕이 흰 코끼리의 상아를 원합니다. 저는 그것을 바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합니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육아백상은 자신의 어금니를 바위에 끼워 흔들어 뽑아내어 사냥꾼에게 바친다. "왕에게 가져가시오. 상아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드리리라" 사냥꾼은 그 자비와 고통스러운 보시의 장면을 보고 통곡하며, 그 상아를 왕에게 바치지 않고 수행자가 되었다고 한다.
부처님은 곳곳에서 전생의 일을 자주 이야기하였는데, 자신의 어느 한 전생은 `마하고빈다`라는 바라문이었다고 하였다. 이 시절 열반으로 이끄는 길을 가르치지 못하고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법만을 가르쳤고, 자신도 범천의 세상에 거듭 태어났다고 하였다. 그 요인은 팔정도를 몰랐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깨달음을 얻은 금생에는 열반에 이르는 길을 가르치는데, 그 길이 팔정도라고 하여 곳곳에서 팔정도를 강조하였다.
◆불교경전인 <잡보장경(雜寶藏經)>의 `기로국(棄老國)` 이야기에도 부처님의 전생이 언급되어 있다.
불교경전인 <잡보장경(雜寶藏經)>에 기로국(棄老國)에는 나이 든 노인을 버리는 나쁜 풍습이 있었다는 것이 나온다. 약 2,500여 년 전에 부처님께서 언급한 기로국은 부처님 생존시 보다 훨씬 전에 있었던 나라였다. 여기에서도 부처님께서 자신의 전생을 언급하였다. "비구들이여, 그때의 그 대신의 아버지는 바로 나요, 그 대신은 저 사리불이며, 그 왕은 저 아사세왕(阿○世王)이요, 천신은 바로 저 아남이었느니라"
기로국(棄老國)에 있었던 이 풍습을 1919년 미와다 다마키가 <전설의 조선>이란 동화집에 고려시대에 있었던 고려장 풍습으로 조작했다. 1924년 조선총독부가 펴낸 <조선동화집>에 이것이 수록되었다. 그리고는 조상을 갖다 버리는 불효의 나라 후손들이 조센징인데 일본의 식민지가 된 덕분으로 근대화가 되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강조하여 교육하였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부모를 제대로 봉양하지 않으면 엄격하게 처벌하는 등 효를 매우 강조하였다. 이런 나라에 고려장 풍습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고려장이 실제 있었던 풍습으로 교육되었다.
해방 후 1948년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편수관보를 역임한 이병도의 <조선사대관>에 고려장이 수록되고, 1960년대 김기영의 고려장이라는 영화를 통해 더욱 일반화되어 역사적인 사실로 인식되었다. 해방 후에도 고려장을 사실로 교육하였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관을 역임한 신석호가 1965년까지 국사편찬위원회를 장악하여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교육하였기 때문이다. (경남매일 칼럼 `고려장과 애밀레종 이야기`에서 발췌)
가장 광복이 되지 않은 분야가 역사학이다. 국어와 음악, 미술 등의 과목에서는 교과서에 일제강점기 친일행위를 한 사람들의 작품이 실리지 않으나, 역사학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만든 역사가 그대로 교과서에 실려서 교육되는 부분도 있다. 경남매일 칼럼 `광복 80년, 역사학은 아직 광복되지 않았다`와 `해방 80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억의 전쟁`, `식민사학자 이병도와 함석헌의 역사관과 삶`을 보면 그 실태를 알 수 있다.
◆성철 스님의 열반송(涅槃頌)에 환생이 시사(示唆)되어 있다.
성철 스님은 우리 시대의 큰 스님으로 평생을 청빈하게 사시면서 철저한 수행으로 스님의 본연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신 분이다. 종정으로 추대 되었을 때, 추대식에 참여하는 대신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는 법어를 보낸 일도 있었다.
철저히 계율을 지키면서 훌륭한 많은 법어를 남긴 성철 스님의 열반송(涅槃頌)
生平欺狂男女群(생평기광남여군)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彌天罪業過須彌(미천죄업과수미)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活陷阿鼻恨萬端(활함아비한만단)
산 채로 아비(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一輪吐紅掛碧山(일륜토홍괘벽산)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 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이 열반송을 읽고 불교와 성철 스님을 잘모르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은 "성철 스님이 많은 사람들을 속여서 그 죄로 지옥에 간다는 것을 죽기 전에 실토했다"고 한다.
불교와 성철 스님을 아시는 분들은 "그것은 마음이 깨끗하여 거기에 작은 티끌이 있어도 드러나고, 그 티끌을 다 지우지 못한 것에 대한 참회라고 볼수도 있는 것을 곡해하는 것이다. 마음에 온갖 찌든 때가 덮혀 있어서 티끌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참회 자체를 무시하는 죄악에 물들어 있으면서도 자기합리화를 위해 자기 수준에서 폄훼하는 것이다"고 한다.
"사악한 사람들은 죄가 뻔함에도 부인하는데, 성철스님은 죄가 없어도 남의 죄를 다 사하지 못한 것을 자기의 죄로 자처하는 거룩한 성자의 풍모를 보여주고 있다. 일륜은 깨달은 불성의 수레바퀴이고 성자로서의 모습이며, 푸른 산이란 청정한 극락정토를 말한다. 깨달음의 수레인 법륜이 푸른 산에 걸렸다는 것은 완전한 열반인 적멸에 들지 않고 중생을 다 제도하지 못한 한으로, 높은 서원을 세워 다시 이 사바세계로 환생하여 교화하고 구원하겠다는 뜻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감사하고 고맙게 여겨진다"는 분의 말씀에 공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