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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호 소설 <도바 위에 뜬 별>
제18회 - 옆으로 누운 반달

손병호 소설 <도바 위에 뜬 별>
제18회 - 옆으로 누운 반달

창원일보 | 입력 : 2026/09/3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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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 1959년 함안 출생    

나는 그때는 몰랐다. 그녀가 이날 보았던 풍경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래도 삼십 년 동안 여기서 장사하셨으면 단속하는 사람들도 이모님을 알지 않아요?”

 

지혜가 물었다. 대팔 이모가 코웃음을 쳤다.

 

“알면 뭐 하노. 법이 그렇다는데”

 

“단속 나오면 정말 장사를 못 하게 해요?”

 

“못 하게 하는 정도가 아니지”

 

이모가 튀김용 긴 대나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예전에는 단속차 뜨면 난리가 났다. 저쪽 골목에서 누가 ‘단속 떴다!’ 하고 소리 지르면 장사꾼들이 좌판이고 리어카고 뭐고 끌고 뛰는 기라. 미처 못 치우면 물건 싣고 가뿐다”

 

“물건을 가져간다고요?”

 

“그럼. 장사 밑천을 통째로 뺏기는 거지”

 

이모의 설명에 지혜의 눈이 커졌다. 

 

“한 번은 기름솥에 불을 막 껐는데 단속이 들이닥친 적도 있다. 솥은 뜨겁지, 기름은 출렁거리지. 그래도 우짜노. 안 들고 뛰면 다 뺏기는데”

 

이모는 자신의 말끝을 흐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웃음기가 없는 웃음이었다.

 

나는 문득 이모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등에 검버섯이 번지고 마디가 굵어진 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 손은 그저 튀김을 잘 뒤집는 장사꾼의 손으로만 보였다. 그 손으로 뜨거운 기름 솥을 들고 골목을 뛰었을 것이다. 스무 해 전에도, 십 년 전에도.

 

“그러면 장사를 그만둘 생각은 안 하셨어요?”

 

지혜가 물었다.

 

이모가 이번에는 정말 우습다는 듯 웃었다.

 

“피디 양반도 참 싱거운 소리 하네”

 

그리고 집게를 들어 튀김용 반죽을 묻힌 오징어 다리 하나를 반죽대야에서 꺼내어 기름 솥에 넣었다.

 

“삼십 년을 이걸로 새끼들 키우고 먹고살았는데 내가 이거 말고 뭘 하겠노”

 

지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나는 그게 오히려 좋았다. 괜히 힘든 사람 붙잡아 놓고 인생이 어떻고 희망이 어떻고 물어대는 사람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 먹고 사는게 중요한 사람들에겐 먹고사는 것 자체가 대답일 때도 있었다. 잠시 뒤 지혜가 수첩을 다시 펼쳤다.

 

그러나 조금 전과는 달랐다. 무엇을 받아 적기보다 생각을 정리하는 것처럼 펜 끝만 종이 위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이모님”

 

“와요?”

 

“아까 얼굴은 안 나오면 좋겠다고 하셨죠?”

 

“그렇지”

 

“그럼 처음에는 손부터 찍을게요. 튀김하시는 모습하고 손님들 오가는 모습 위주로요. 인터뷰도 꼭 얼굴이 다 나오게 할 필요는 없고요”

 

이모가 처음으로 지혜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았다.

 

“그래도 되는교?”

 

“그럼요”

 

“난 또 방송국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되는 줄 알았는데”

 

지혜가 웃었다.

 

“저희가 부탁드리러 온 거잖아요”

 

나는 옆에서 그 말을 듣다가 잠시 그녀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밀양으로 가던 차 안에서 카프카와 최인훈을 이야기하던 여자, 중동집 포장마차에서 부표 아래 보이지 않는 줄을 이야기하던 여자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자기가 가진 명함이나 방송국이라는 이름을 앞세우지 않았다. 상대가 싫다고 하면 왜 싫은지를 먼저 들었다.

 

“그럼 이모님은 지금 방송 촬영하는데 찬성하신 것 맞죠?” 

 

내가 다짐을 받으려는 듯 정색을 하고 묻자 이모가 마지못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성호 니가 데리고 왔다 아이가. 니 봐서 하는 기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대팔이가 손뼉을 쳤다.

 

“됐다!”

 

“이놈아야, 되기는 뭐가 됐노?”

 

“이모는 인자 국제적인 인물 되는 기다”

 

“아이고, 또 그 소리네, 국제적이고 국내적이고 간에 퍼뜩 저 고구마 박스나 치워라”

 

“이모야, 일본 방송 나가면 내 얼굴도 좀 찍어달라 해라”

 

“니 얼굴은 일본 사람들이 싫어한다”

 

이모의 엉뚱한 대답에 주변 상인들의 웃음이 터졌다.

 

대팔은 억울하다는 듯 윤지혜를 바라보았다.

 

“피디님, 내 얼굴이 방송에 못 나갈 얼굴입니까?”

 

지혜가 대팔의 얼굴을 한참 뜯어보는 척했다.

 

“글쎄요. 그건, 카메라 감독님하고 상의를 좀 해봐야겠는데요”

 

이번에는 나까지 웃음을 터뜨렸다.

 

“보소, 피디님. 내가 이래봬도 국제시장에서는 제법 알아주는 사람입니더”

 

“뭘로?”

 

내가 짖궂게 대팔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대팔이 잠시 머뭇거렸다.

 

“그냥……. 여러 가지로”

 

“그래 맞다. 우리 대팔님, 유명하시지. 여러 가지 사고 치는 걸로 국제시장에서 이름 나 있지“

 

“아이 씨, 이모는 그렇다쳐도 성호 니까지 와 그라노?”

 

왁자한 웃음이 시장 골목으로 번졌다. 그날 섭외는 그렇게 끝났다. 며칠 뒤 방송국 촬영팀이 국제시장으로 들어왔다. 카메라와 조명 장비를 든 사람들이 나타나자 평소와 다를 것 없던 골목이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뭐 찍는데?”

 

“어느 방송국이고?”

 

“몰라, 우째든 일본에서도 카메라가 온다 카더라”

 

말은 사람보다 빨랐다. 촬영이 시작되기도 전에 시장 사람 절반이 이미 내용을 알고 있었다. 대팔은 아침부터 새 옷을 입고 나와 있었다. 평소에는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슬리퍼를 끌고 다니던 녀석이 그날따라 남방까지 바지 안에 집어넣고 머리에는 기름까지 발랐다.

 

녀석을 보자마자 내가 물었다.

 

“니 오늘 선보러 가나?”

 

“오늘 방송 찍는다 아이가”

 

“일마야, 니를 찍는 게 아니고 니 이모를 찍는 기다”

 

“혹시 아나. 지나가다가 내 얼굴도 카메라에 한 번 잡힐지”

 

“내 생각으론 카메라가 니 얼굴 보면 대충 알아서 피해갈 것 같은데”

 

대팔은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촬영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계속 얼쩡거렸다. 정작 방송의 주인공인 이모는 평소와 똑같았다.

 

꽃무늬 두건을 쓰고 기름때 밴 앞치마를 두른 채 튀김 솥 앞에 서 있었다. 다만 평소보다 오징어와 고구마를 조금 많이 준비해둔 것을 보니 이모 역시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윤지혜는 촬영팀과 튀김 리어카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시장 입구부터 잡으면서 한번 들어올게요”

 

“튀김 리어카 바로 잡지 말고 골목 간판들 먼저 훝어주세요”

 

“저쪽 할머니 좌판 지나갈 때 너무 가까이 붙지 마시고요”

 

어제까지 나와 마주 앉아 소주를 마시던 여자가 맞나 싶었다. 말은 짧았고 움직임은 빨랐다. 촬영기사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다가도 시장 상인이 지나가면 먼저 길을 비켜주었다. 카메라 때문에 장사를 방해하지 않도록 몇 번이나 사람들의 동선을 살폈다. 나는 골목 한쪽에 기대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때, 일본 방송 측 피디와 한창 카메라 슈팅 장면에 대해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지혜가 나를 발견하고는 가까이 오라는 손짓 사인을 보냈다.  내가 다가갔다.

 

“왜 불렀어요?”

 

“선생님, 다른게 아니고 이모님이 약간 긴장하시는 것 같아요”

 

튀김 리어카 방향으로 쳐다보니 아닌 게 아니라 이모의 손놀림이 평소보다 많이 어색했다. 삼십 년 동안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씩 뒤집었을 튀김을 괜히 이쪽으로 옮겼다가 저쪽으로 옮기고 있었다. 카메라가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내가 이모 옆으로 갔다.

 

“이모님요”

 

“와?”

 

“고마 카메라 없다 생각하고 평소 하던 대로 하이소”

 

“저 시커먼 게 눈앞에 버티고 있는데 우째 없다 생각하노”

 

“그럼 저게 대팔이 얼굴이라 생각 함 해보이소”

 

이모가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라모 더 보기 싫을 낀데”

 

촬영팀에서부터 웃음이 터졌다. 그때부터 이모의 손이 조금씩 제 속도를 찾기 시작했다.

 

튀김옷을 입힌 오징어가 기름 속으로 들어갔다.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왔다.

 

젓가락이 몇 번 움직이자 허옇던 튀김옷이 노릇노릇한 빛으로 변했다.

 

카메라는 이모의 얼굴 대신 손을 따라갔다.

 

굵어진 손가락. 검버섯이 핀 손등. 기름 솥 위를 삼십 년 동안 오갔던 손.

 

윤지혜가 카메라 뒤에 서서 그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뒤 손님 한 사람이 튀김을 집어 들었다.

 

“아지매요, 오늘은 와 카메라까지 왔능교?”

 

이모가 웃으며 대답했다.

 

“몰라. 내 팔자에도 이렇게 테레비 나오는 날이 있는갑다”

 

“아지매요? 그라모 오늘은 돈 안 받아야 되는 거 아이가?”

 

“와 이카노, 이 문디야, 퍼뜩 돈 내놔라. 테레비 나오는 것하고 니가 오징어 튀김 쳐묵은 것 계산 하는 것 하고 무슨 상관이고”

 

시장 사람들이 또다시 와르르 웃었다. 카메라맨은 그 웃음까지 카메라에 담겼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때 문득 시선 하나가 느껴졌다. 고개를 돌렸다. 윤지혜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옆으로 누운 반달 모양의 눈이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왜 웃느냐는 듯 눈썹을 조금 치켜올렸다. 그녀도 웃음 진 얼굴로 나를 따라 눈썹을 치켜세우는 시늉을 하고서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카메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팔 이모의 촬영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시장 사람들이 하나둘 좌판을 걷고 불을 끄자 낮 동안 사람들로 북적이던 골목도 빠르게 어두워졌다. 대팔 이모는 남은 튀김을 몇 봉지에 나누어 담고 빈 기름통과 그릇들을 리어카에 실었다.

 

“이제 끝난 겁니까?”

 

“예. 근네 이모님 일 마치고 가시는 데까지만 조금 더 찍을게요”

 

지혜의 말에 이모는 알아서 하라는 듯 리어카 손잡이를 잡았다. 가게 불이 거의 꺼진 시장 골목을 이모가 천천히 걸어갔다. 리어카 바퀴가 울퉁불퉁한 바닥을 지날 때마다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텅 빈 골목에 울렸다.

 

시장 끄트머리에 이르렀을 때였다. 문을 닫은 가게 처마 밑에 몇 사람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이모는 그들을 보자 아무 말 없이 리어카를 세웠다.

 

“오늘 튀김이 좀 남았는데. 묵을라요?”

 

이모가 남은 튀김이 든 봉지 몇 개를 건네자 그중 한 사람이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고맙심더”

 

“식기 전에 퍼뜩 묵으소”

 

이모는 다시 리어카 손잡이를 잡았다. 카메라는 어두운 골목 저편으로 멀어지는 이모의 뒷모습을 한동안 따라갔다. 지혜는 좀처럼 컷을 외치지 않았다. 리어카 바퀴 소리가 골목 끝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조용히 말했다.

 

“여기까지 할게요” 

 

촬영팀이 장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골목 한쪽에 서서 담배를 꺼냈다. 지혜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다 말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음식보다 사람을 더 많이 본 것 같아요. 선생님이 왜 이 사람들하고 어울려 사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고요”

 

나는 대답 대신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둠 속에서 조금 전 촬영 때 나를 보고 웃던 그녀의 눈이 떠올랐다. 옆으로 누운 두 개의 반달이 캄캄한 시장 골목을 빠져나올 때까지 나를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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