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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위원 |
이른 아침 창에 비치는 햇살이 어깨동무처럼 다정한 계절이다. 흔히들 계절의 여왕 5월이라 하지만 가을 또한 여심을 사로잡는 계절이 아닌가 싶다. 가을이 무심히 왔건만 아파트가 숲을 이룬 도시에서는 귀뚜라미 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매미 소리가 점점 작아지면서 구만리 장천은 눈이 시리도록 곱다. 서녘 하늘의 노을과 아우러진 붉게 타는단풍의 향연, 임을 떠나보낸 듯한 시골길 골목에는 외로운 달빛만 풍경처럼 일렁인다. 뜨겁게 땅을 달군 무더위가 도적처럼 달아나고 선선한 바람이 옷깃을 여민다. 가을을 타는 남자는 다 글럴까? 자연을 벗 삼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여행은 단순할수록 좋다. 하늘은 이불 삼고, 땅을 베개 삼아 추위가 엄습하면 삼아 산천을 땔감 삼으면 된다. 보통 `가을` 하면 무엇이 생각날까? 등화가친, 독서의 계절, 사색의 계절이라 부르기도 한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음식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로 지칭하게 된 것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경성에 총독부 도서관을 열면서 조선인에게 일본 책을 읽히기 위해 이 무렵을 독서주간으로 정하고 책을 읽힌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죽간 책이 만들어지던 시대에, 대나무 수확 시기가 가을이다. 이때 죽간 책이 만들어지기에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장 설득력 있는 설은 풍요의 계절에 곡식을 저장하듯 머리에도 지식을 가득 채우자는 의미로 붙여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게다가 한때,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1년 중 가장 책이 많이 팔리는 계절이 가을이라, 출판사들 사이에서는 가을의 책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인 결과이기도 하다.
호계 탁구 클럽 어느 지인은 독서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한다. "책은 지혜의 보고이며 책 속에서 삶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청소년기에는 무조건 책을 많이 읽어라. 글을 쓰는 것은 뼈를 깎는 아픔이고 단련이며 세상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된다"며 독서의 중요성을 말했다. 필자는 가을 하면 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고은의 시가 절로 흘러나오는 계절이다. 이렇게 시 한 수를 짓고 노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하게 사는 것일까. 가을은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 쓰기 좋은 계절이다. 먼 옛날 은행잎이 노랑나비의 주검처럼 휘날리던 먼지 자욱한 시골길 우체국에서 마음을 먼저 보낼까 연서를 먼저 보낼까 망설였던 추억이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가을은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은 문장을 적어 보내고 싶은 계절인 건 변함없다.
가을 하면 무엇이 생각나나 고민하던 중 문뜩 `편지`를 떠올렸다. 운전 중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린 노래 가사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왠지 편지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난 것이다. 편지는 사람의 마음을 몽클하게 만들어 주는 매력이 있다. 보통 어디 두었는지 모르고 있다가 가끔 책장을 정리하다 보면, 학창 시절 `롤링페이퍼`와 미처 버리지 못했던 `연애편지` 초고를 잔뜩 적어뒀던 노트를 발견하게 된다. 편지를 보면 당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곤 한다. 지금은 자주 쓰지 않는 단어지만 그때는 마치 그 단어를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내용도 있다. 풋풋하고 청운의 꿈을 안고 있었던 젊은 날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필자도 모르게 피식 미소를 짓기도 한다.
가끔은 잊고 지내던 친구와 선ㆍ후배들이 떠올라 학창 시절 졸업앨범을 꺼내 보기도 한다.
여러분은 편지를 마지막으로 써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하시는가? 요즈음은 휴대전화 보급으로 편지로 마음을 전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SNS나 휴대전화 메시지로 대체돼 직접 필기구로 편지를 써본 기억이 언제인지 기억이 아득하다. 마음을 전하는 수단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휴대전화 등을 이용한 메시지는 각종 줄임말과 이모티콘으로 화려해 보이기도 하지만,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채우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오래된 편지에서는 눅눅하지만 과거 기억을 떠올리는 냄새와 흔적, 그리고 잉크가 바래 글자의 형태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왠지 편지지를 만지는 순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그 순간에 멈춘 듯한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사람마다 조금 다르겠지만, 간직하고 있는 편지라면 왠지 다시 한번 꺼내 보고 싶은 게 사실일 것이다. 누구든지 풋풋하거나 애절했던 감정을 편지지라는 공감에 묻어 보관하고 싶은 감정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편지는 아마도 우리들에게 자물쇠 없는 타임캡슐이라는 생각이 든다. 잊고 있다가 우연히 발견한 편지에는 나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 준 이야기들이 적혀있기 때문이다. 아직 누군가에게 있을 편지에 어떤 말들이 적혀 있었을까?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 사랑이었다.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편지는 누군가가 나에게 해 준 이야기가 남아있을 역사이다.
오늘은 지금을 함께 기억하고 싶은 이에게 편지를 써보는 건 어떨까? 말에도 힘과 감동이 있지만, 글의 힘이 훨씬 강하고 감동을 주며 가슴을 적신다. 오래도록 보관하다가 두고두고 볼 수 있는 편지 문화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아주 먼 옛날 햇살이 알알이 부서지는 대문 앞에서. 어김없이 구릿빛 얼굴의 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린다. 그는 내가 왜 묵묵히 서 있는지 알고 있었다. 어느 연인이 필자에게 보낸 향기 그윽한 편지가 있음, 필자의 이름을 부르며 "어허 `외호` 오늘 네가 기다리는 여학생의 편지가 있네, 참 좋겠다" 고 하면서 편지를 전해주었다. 필자는 지웠다, 다시 쓰기를 반복한 그녀의 편지를 읽으면서 분홍빛 답장을 쓰느라 밤잠을 설치곤 했다. 학창 시절 첫사랑의 그 여인이 그립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신지? 내가 보낸 연분홍빛 편지를 꼭꼭 숨겨두고 가끔 꺼내 보며 그리움에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까?" 언젠가 만나게 되면 지난 첫사랑의 물레방아를 돌리면서 밤새 정담을 나누고 싶다.
어디에선가 기러기 날갯짓하는 소리가 귓전을 스쳐 지난다.
http://www.changwonilbo.com/news/309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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