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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위원 |
각각 다른 부모, 다른 환경에서 살아서 각자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면 대화는 흔히 우김질이 된다. 목사가 낫다, 스님이 낫다. 천국이 있다. 없다. 소방차는 속도를 위반해도 된다. 안 된다. 는 등 기상천외(奇想天外)의 것에 이르기까지 그 제재의 다채로움과 그 목소리의 과열함은 불을 뿜어내는 듯하다.
창에 비치는 가을 햇살이 유난히 고운 어느 날 아침이었다. 이러한 부질없는 일 또한 병통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에 잠겨있을 때, 아내가 다가와 천원권 지폐를 내밀었다. 그 지폐 속 인물은,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바라보고 있는 조선시대 국보급 유교 사상가인 퇴계 선생의 인자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수시로 퇴계 선생을 만나지만 지폐 속의 인물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의 지폐에 초상(肖像)이 사용되는 경우, 그 인물은 그 나라 역사에서 모범적인 삶을 살았거나 막대한 영향을 미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상은 특정인을 묘사하는 회화의 한 분야이겠지만, 돈 때문에 행해지는 사회악을 생각건대 지폐 속의 초상은 재고해 볼 여지가 있다. 지폐 속 인물을 보는 순간, 퇴계가 병통에 대한 경계를 `맹자`에 나오는 유명한 `알묘조장` 즉 억지로 싹을 뽑아 올려서 싹이 자라는 것을 돕는다. 는 고사(古事)가 떠올랐다.
아내는 일상에 쫓기는 나에게 퇴계 선생의 알묘조장을 통해 삶의 여유를 가져보라는 것이다. 알묘조장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 일과 관련되고 있다. 맹자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르는 직업에 종사하고,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마라. 마음에 잊지도 말고 억지로 조장하지도 말 것이며, 송나라 사람과 같이하지 않아야 한다.
송나라 사람 중에 벼의 싹이 빨리 자라지 않음을 안타깝게 여겨 그것을 뽑아 올려놓은 자가 있었다. 그는 벼가 어떻게 됐는지 아무 생각 없이 집으로 돌아와 집안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오늘 나는 매우 피곤하다. 내가 뼈 싹이 빨리 자라도록 도왔다"고 하는 말을 들은 아들이 밭으로 달려갔다. 세상에 벼 싹은 이미 말라 죽어있었다. 송나라의 어리석은 사람처럼 벼 싹이 빨리 자라도록 억지로 조장하지 않는 자가 적다. 대개가 조장하고 있다. 유익함이 없다. 해서 버려두는 자는 비유하면 벼 싹이 잘 자라도록 김매지 않는 자요. 억지로 조장하는 자는 싹을 뽑아놓은 자이니 이런 행위는 유익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해치는 것이다.(맹자 공손추상) 그렇다면 우리는 `알묘조장`이란 고사를 통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벼 싹뿐만 아니라 식물은 적절한 환경( 햇볕. 비. 바람. 기온. 손길) 조건에 따라 일정한 기간이 지나야 만이 된다. 봄에 곡식의 씨앗을 파종해, 싹이 트고 김을 매고, 강한 햇볕과 적절한 비와 바람, 적절한 손길이 닿아야 만이 추수가 가능하다. 그것은 자연의 질서이며 천리(天理)이다. 그런데 그 싹이 자라지 않는다고 인위적으로 뽑아 올리다니, 인간이 얼마나 지혜롭지 못한지, 어쩌면 어리석음의 고물상(古物商) 이란 것이다. 현대 사람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알묘조장의 삶과 너무 친숙해졌다.
일확천금, 한탕주의 환상은 모래성의 누각(樓閣)으로 빨리 벗어나는 길만이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일을 할 때도 마음에 내킬 때 기쁘게 하라"고 퇴계는 가르친다. 유교에서는 이러한 방법의 핵심을 `함양(涵養)` `체찰(體察)` 이라고 한다. 함양은 쉽게 얘기하면 `마음으로 무젖게 해 기르는 일이고, 체찰 은 `몸으로 살피는 일`이다. 몸과 마음은 바로 인간의 내외(內外)면을 아우르는 말이다. 내 마음의 흡족함에 따라, 몸의 성질에 따라, 행하는 일이 함양이자 체찰이다. 이런 중층(中層)적 성찰(省察)을 통해 인간은 자신을 가꾸고 완성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이때 마음의 병 스트레스는 내 몸 어디에도 발붙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갓 태어난 아기가 빨리 자라지 않는다고 사지를 당겨 늘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모든 답은 알묘조장에 있다는 것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듯한 삶의 속도가 두려워서인지 느림의 미학을 예찬하는 책이 심심찮게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미로득한방시한(未老得閑方是閑)`이란 말이 있다. 젊었을 때 얻는 한가로움이 제대로 된 한가로움이란 뜻이다. 사실 다 늙어 한가로운 것은 제대로 할 일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으나 여유를 가지는 것이 진정한 한가로움이란 것이다.
시나브로 다짐하고 있지만 책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겠다. 좋은 책은 인생의 지혜를 담고 있는 보고(寶庫)이자, 병통을 경계할 수 있는 길잡이다. 삶의 세계는 거의 사고(思考)의 시간들이다. 책은 영혼을 먹여 살리는 보약(補藥)이며 친구라는 사실을 알 때 벼 싹을 억지로 뽑아 올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http://www.changwonilbo.com/news/31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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