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틈을 타 고향 이발관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마 이 문을 열고 들어온 지가 넉넉잡아 언 40여 년은 족히 되는 듯했다.
함안군 군북면 장지리 남산동 양지마을 `장지협동이발관`이다.
60년 세월 동안 지역민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곳.
세월이 흐르는 동안 허름하지만 푸근함이 묻어있는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이발관이다.
지금까지 장지이발관을 지키고 있는 장본인은 바로 동네 이발로 외길을 걸어온 `이발사 아재` 안인수(사진ㆍ82)씨다.
이발관에서 반갑게 그를 만났다.
이발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고 아직도 친절하면서 직접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이발로 재능기부도 숱하게 해 온 인물이다.
장지이발관에는 영업시간을 알리는 뱅글뱅글 도는 삼색등 간판도 없다.
이발소 내부 벽면에 붙어있는 빛바랜 오래된 면허증, 이용요금표, 영업신고증, 위생교육수료증 들만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중간 선반에는 그의 손때 묻은 추억의 수동 바리깡(이발기)이 놓여있고, 이발 후 머리를 감을 때 문질러주는 시원한 옛날 빡빡 브러시와 작고 앙증맞은 양철 물조리개, 면도용 쉐이빙폼이 아닌 비누거품을 사용하는 비누통이 눈에 들어왔다.
이 도구들이 모두 장지이발사의 오랜 벗이자 전문장비다.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추억의 세면대도 정겨움을 더했다.
처음 문을 연 1965년 그때 그 시절 타일로 만들어진 모양 그대로였다.
빨랫줄에 늘려져 있는 작고 얇은 수건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사용되고 있었다. 불편함이 없다는 증거다.
이발관에는 더 많은 추억이 서려 있다.
옛날 군북 5일장 가는 날과 설ㆍ추석명절 전에는 이발관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가면 무조건 이발을 했다.
장지이발관의 전성기 때는 이발을 전담하는 동네가 장지마을만 6개 동네에, 이웃 마을 유현리까지 합치면 꽤 넓고 그 숫자만 해도 대단했다.
그땐 어린 여자아이들까지도 남자아이들과 똑같이 여기서 이발을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 손님만 해도 그때는 150여명이 족히 넘었으니 말이다. 어른들까지 치면 그 숫자는 엄청났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주 이발을 하지는 못했다.
설 추석 명절 두 번은 꼭 하는 편이고, 특히 학기 중 방과 후 학생들에게는 자전거에 이발 의자와 도구를 싣고 마을을 직접 돌며 이발을 해주곤 했다.
어려운 시절인 만큼 그 당시 이발료는 돈으로 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이발 품삯을 료대(料臺)라 하여 1년치 나락이나 보리 등의 곡식으로 대신 치렀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면서 장지이발관의 흔적도 점점 사라져 간다.
인구가 줄면서 이용객도 자연스레 그만큼 줄어들었다.
몇 날을 두고 단 한 명의 손님도 없는 날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지금은 손님이 전화 오면 일명 `콜(call)`이발을 해주는 정도다. 이 양상이 꽤 오래됐다.
이날도 이발관에 들른 마을 이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형님 혹시 언제까지 (이발)하실 생각입니꺼?"라고 말을 건네자 "얼마나 하겄나? 세월을 보내는 재미로 하지 뭐…"라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이발로 긴 세월을 살아온 `무념무상` 그 자체였다.
간판은 세월을 이기지 못한 탓인지 사라지고 흔적도 없다.
그냥 이발관으로 통하는 장지이발관만으로도 손색없고 고스란히 추억만이 묻어있다.
물밀 듯 신문물(新文物)이 쏟아지는 틈바구니에서도 지금까지 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는 유일한 곳, 정감이 있는 장지이발관….
오늘도 전기면도기로 이용하지만, 장지이발관 이발용 의자에 누워 면도를 받던 서비스가 전기면도기보다 면도칼로 하는 서걱거리는 느낌의 소리를 지울 수가 없다.
/김인교 기자
http://www.changwonilbo.com/news/316516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독자의견 (총 0건)
